12일 개막한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리뷰
주요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 함성과 함께 열띤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국립오페라단이 16년 만에 전막 공연하는 '나부코'는 12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막이 올랐다.
올해 '나부코'는 작품의 예술성을 책임진 스테파노 포다 연출의 세련미가 무대 곳곳에서 드러난 공연이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과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는 시대적 배경을 가늠할 만한 무대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미니멀리즘의 묘를 살린 현대적인 연출로 무대가 꾸려졌다.
그렇다고 무대가 공허하진 않다. 상징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다. 무대에 등장하는 조형물들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거대하고 인상적이다. 그 규모와 만듦새를 보고 있으면 이번 공연에 상당히 큰 제작비가 투입됐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공연이 목말랐던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수들의 의상도 디자인이나 색상이 절제돼 있다. 바빌론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붉은색, 흰색 옷들로 통일됐는데 군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의상 색깔은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 배경색과 맞물리며 두 민족의 대립을 직관적으로 묘사하면서 몰입감을 지속시켰다.
정제된 무대와 의상은 결과적으로 가수의 노래와 연기에 대한 주목도를 끌어 올리는 효과를 거뒀다. 특히 개막 공연에서 나부코 역을 맡았던 바리톤 고성현과 아비가일레 역의 소프라노 문수진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흠잡을 데 없는 성량과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역할 특성을 십분 살렸다. 나부코는 바빌론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침략하지만 끝내 회심하는 인물이고, 나부코의 딸인 아비가일레는 그릇된 욕망에 빠져 권력을 탐하다가 비극을 맞는 여인이다.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포다 연출이 한국적 정서인 한(恨)을 무대에서 표현했다는 점이다. 다른 국가로부터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이스라엘 민족과 한국인은 정서를 공유한다. '나부코'에서는 가장 유명한 아리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무대 위에서 노예 신분을 연기하는 가수들이 순백의 옷을 입고 조국을 그리워하며 해방을 꿈꾸는 노래를 부를 때 무대 뒤편에는 '한'이라는 고딕체 글씨가 거대하게 등장한다. 다만 연출 의도를 문자로 직접 표현한다는 점에서 관객이 해석할 여지가 다소 제한되는 측면이 있었다.
'나부코'의 음악을 담당한 홍석원 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공연 첫날이었음에도 노련한 연주력과 가수들과의 매끄러운 호흡을 자랑했다. 지휘자의 비팅에 맞춰 가수들의 노래는 정확히 시작되고 마무리됐다. 특히 서곡은 독립된 정규 클래식 공연에서 연주됐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고, 매력적인 템포를 들려줬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는 최근 환골탈태한 국립극장의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됐다는 점에서도 공연계 기대를 모았다. 애초부터 오페라극장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해오름극장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음향을 객석에 제공했다. 자연음향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한 공연장답게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또렷하게 객석 구석구석으로 도달했다. 소프라노의 고음 역시 충분히 공명되며 여운을 남겼다. 다만 잔향 측면에서는 체감될 정도로 울림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는 광복절인 1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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