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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영웅' 쿠오모의 몰락, 사임발표 순간에도 성추행 발뺌... "심판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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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영웅' 쿠오모의 몰락, 사임발표 순간에도 성추행 발뺌... "심판은 계속"

입력
2021.08.11 21: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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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뉴욕주지사, 탄핵 위기 앞 자진 사임>
검찰 수사결과 발표 7일 만... 4선 물거품
성추행 부인·치적 강조… "정치?연극" 비판
"가장 충격적인 몰락"?"오만과 위선" 비난
주의회 탄핵절차·검찰 수사 계속 이어질듯
정치 생명 '끝'… "새 지사 과제는 적폐청산"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 주지사가 10일 뉴욕시에서 사임을 발표한 뒤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로 향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 주지사가 10일 뉴욕시에서 사임을 발표한 뒤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로 향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쿠오모의 사임은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몰락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전·현직 보좌관 등 여성 11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탄핵 위기에 몰린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州) 주지사가 10일(현지시간) 결국 자진 사임을 택했다. 뉴욕주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일주일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 대처로 ‘팬데믹 영웅’이란 찬사를 받고, 한때 대권 주자로도 거론됐던 ‘주지사 3선 엘리트 정치인’의 불명예 퇴진이다. 겉으로는 여성 인권을 부르짖고 뒤에선 하급자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이중적 행태’를 보인 ‘권력형 성범죄자’라는 점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쿠오모는 이날 사임을 발표하면서도 반성은커녕, 변명과 발뺌으로 일관했다. 주지사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주정부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정당화했고, 스스로를 “정치적 동기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포장하면서 또다시 결백을 주장했다. 피해 여성들을 향해 “불쾌감을 준 데 대해 사과한다”고 했지만, “내 행동에 악의는 없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세 딸까지 언급했다.

특히 압권은 자신의 임기 중 치적을 굳이 강조했다는 점이다. 쿠오모는 이날 △코로나19 방역 성공 △동성 결혼 합법화 △총기 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 재임 시절 이룬 진보적 성취를 특별히 강조했다. NYT는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에서 미래를 보존하려는 정치적 연극이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의 사과에선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쿠오모는 심지어 ‘내로남불’ 태도마저 보였다. 그는 이날 “어느 누구에게도 선을 넘은 적이 없으나, 다시 그어진 선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면서 “세대적·문화적 변화에 무감각했다”고 말했다.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세대 문제로 협소화시키며 감정적 이해를 구한 것이다. 하지만 쿠오모 자신이 바로 그 ‘선’을 다시 긋는 일에 앞장선 당사자라는 점에서 설득력도 없는 데다, ‘두 얼굴의 뻔뻔함’을 보였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알려진 대로 그는 ‘미투(MeToo)’ 운동 지지자였다. 2013년 직장 내 성희롱 금지를 담은 여성 평등법을 발의했고, 2018년엔 여성을 폭행한 혐의를 받던 에릭 슈나이더먼 주검찰총장에게 사임을 요구했다. 2019년 직장 내 차별 금지법도 제정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그의 성추행 사건 일부는 진보적 의제를 추진했던 시기에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쿠오모의 정치 역정과 몰락을 이야기할 땐, 알파벳 ‘H’로 시작하는 두 단어가 고려돼야 한다”며 “바로 오만(Hubris)과 위선(Hypocrisy)”이라고 일갈했다.

10일 미국 뉴욕시의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옥외 전광판에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사임 발표 뉴스가 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10일 미국 뉴욕시의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옥외 전광판에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사임 발표 뉴스가 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쿠오모의 적극적 자기 방어는 향후 정치적 재기 및 명예 회복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12년간 뉴욕주지사를 지낸 부친 마리오 쿠오모의 후광 아래 정계에 입문했고, 지금껏 탄탄대로를 걸었다. 뉴욕주 정책보좌관과 뉴욕주 검찰, 빌 클린턴 행정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뉴욕주 검찰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10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돼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지금은 이혼한 상태지만 로버트 케네디의 딸 케리 케네디와의 결혼은 두 정치 명문가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초대 법무장관 물망에 오를 만큼 정치적 입지도 탄탄했다.

하지만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사임 의사를 밝혔더라도 의회에서 탄핵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뉴욕주 하원은 탄핵 절차의 계속 진행 여부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일부 의원들은 탄핵 심판에 수백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정치적 단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론 김(민주당) 의원은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을 묻는 게 의회가 할 일”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가학적이고 악의적인 정치 행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탄핵될 경우 향후 공직 출마가 금지된다.

탄핵과는 별개로 사법 처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뉴욕주 내 지방검찰청 5곳이 쿠오모의 성추행 혐의를 수사 중이다. 연방 당국에선 요양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 통계를 고의로 누락한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회고록 출판에 주정부 직원을 동원했다는 혐의(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쿠오모는 ‘14일 후’를 사임 시기로 못 박았다. 그럼에도 단시일 내에 뉴욕주에서 그의 흔적이 지워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오모가 물러난 자리는 캐시 호컬 뉴욕 부지사가 이어받아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로 2022년 12월까지 임기를 채울 예정이다. 다만 린다 레이스웰 뉴욕금융감독청 청장과 롭 무히카 주 예산국장 등 주정부 곳곳에 ‘쿠오모의 사람’이 포진해 있다는 게 문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동안 쿠오모 시대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 취임하는 주지사로선 적폐 청산이 상당히 힘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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