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임대사업자 정책 '우왕좌왕'
여당 발표만 보고 집 판 임대사업자 허 찔려
실거주 의무 폐지 이어 "정책 신뢰도 타격 불가피"
#경기 수원시에서 20년째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A(68)씨는 올해 3월 중순에 말소된 소형 아파트가 있었다. 주변 시세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6만 원으로 임대한 아파트다. 아파트 매입임대는 재등록이 안 돼 향후 어떻게 세를 놓을까 고민하던 지난 5월 말 더불어민주당이 등록말소 후 6개월 내 양도시에만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A씨는 6월 말쯤 서둘러 중개업소에 매물로 내놨다. 3월에 말소가 됐으니 9월까지 팔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도한 지 얼마 안 된 최근 민주당이 임대사업자 혜택을 유지한다는 뉴스를 봤다. 허를 찔린 A씨는 “속이 너무 상한다”면서 “민주당 발표만 없었다면 등록이 말소된 후라도 노후자금을 위해 계속 저렴한 가격에 세를 줬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툭하면 뒤집히는 당정의 부동산 정책에 시장이 들끓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5월 발표한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안을 사실상 철회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확정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백지화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부동산 정책이 또 번복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할 정책이 방향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반복되자 시장에서는 “혼란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정책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한다.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지난 5월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임대사업자의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세제 혜택을 없애고, 매입 임대 사업자 신규 등록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기존 사업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혜택도 말소 후 6개월 안에 팔 경우에만 부여하기로 했다. 임대사업자가 과도한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등록 말소된 매물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집값이 상승한 것으로 판단하고, 혜택 폐지로 이들의 물량 출회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말 임대차2법 시행 후 전세 물량이 가뜩이나 줄어든 상황에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등록임대까지 폐지할 경우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또 등록 말소 후 6개월 안에 팔지 못하는 다주택자가 증여나 버티기를 택하면 당정이 기대했던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임대사업자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민주당은 지난 6월 의원총회에서 ‘주택임대사업자 혜택 폐지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고, 결국 철회될 분위기다.
민주당의 발표만 보고 등록 말소된 집을 매도한 A씨는 “집값 상승 시기라 더 있다가 팔면 시세차익도 크고, 임차인도 저렴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단 며칠 차이로 임차인은 물론 나도 큰 손해를 보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민주당 말만 믿고 말소시킨 사람들은 또 울분을 토하겠다. 정말 소송 가야 한다’ ‘국가 정책이 날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등 당정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년을 거주해야 재건축 단지 조합원 자격을 주려던 규제 방안이 1년 만에 국회 입법 과정에서 무산됐을 때도 시장은 들끓었다. 정부 발표만 보고 실거주 의무를 채우기 위해 집주인이 전세로 살던 세입자를 쫓아내면서 전세 품귀 현상만 지속됐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는 정책에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보게 되자 당정의 신뢰도는 거듭 추락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 부문이 제시하는 정책은 시장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이렇게 방향성 자체가 쉽게 흔들리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