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비오 신부 조카가 지켜본 재판정의 전두환
"전두환, 끝까지 재판받을 수 있을까 걱정
죽음 멀지 않은 나이, 용서 빌고 사죄하길"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90)이 9일 광주지법의 항소심 재판에 처음 출석했다.
하지만 전씨의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재판은 30분 만에 끝났다. 전씨는 꾸벅꾸벅 졸거나 호흡 불편을 호소하다 결국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퇴정했다. 서울 연희동 자택 출발 당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현장에서 전씨를 지켜본 고(故) 조비오 신부 조카 조영대 신부는 TBS 라디오 '명랑시사 이승원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한 달여 전에) 뒤뜰에서 산책하던 건강한 모습에 비하면 굉장히 노쇠하고 힘없는 모습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달라졌나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끝까지 재판이 이뤄져야 할 텐데 그런 차원에서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달 5일에도 항소심 재판이 잡혀 있었지만, 출석하지 않은 채 집 앞 산책을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한국일보 카메라에 포착(▶뒷짐 지고 '뚜벅뚜벅'... 정정한 전두환, 골목 나들이)돼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전씨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뒷짐을 진 채 홀로 산책을 즐길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씨가 '노쇠'함을 내세워 재판을 회피하겠다는 전략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1980년 5월 21일과 27일 500MD·UH-1H 헬기의 광주 도심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전씨에게 명예훼손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전씨 측은 여전히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영대 신부는 "1심 재판에서 원고 검찰 측에서 제시한 40건에 달하는 자료들은 헬기 기총소사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너무나도 확연한 과학적 증거와 증언들"이라며 "그럼에도 전씨 측에선 현장에 헬기를 몰고 왔던 (일부) 기총소사의 조종사들 증언만이 신빙성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을 계속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전씨 측이 제시한 기총소사 조종사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조영대 신부는 "헬기를 몰고 왔던 조종사 모두가 헬기 사격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저희들이 확인한 (1980년 당시) 5월 21일 보안사 일일속기에 의하면, 대구에 있는 506항공대에서 정규 노선이 아닌 비노선으로 파견돼 온 헬기가 있었고, 그들에 의해서 사격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광주지검은 5·18 당시 육군 제1항공여단장이었던 송진원씨를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영대 신부는 "송진원씨는 헬기 항공대를 창단했던 사람으로, (발포) 명령의 중간책 지휘자다. 그런데 그 사람이 (5·18 항쟁 당시) 광주에 왔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송진원 항공단장의 위증은 기총소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했다는 (조종사들의) 거짓 증언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핵심은 전씨의 최종 발포 명령 여부다.
조영대 신부는 "전씨는 당시 군 지휘계통으로 볼 때, 또 그해 부당한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던 쿠데타의 최종 책임자, 원흉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이 모든 만행의 가장 최고 사령탑 아니냐"며 "기총소사뿐 아니라 광주에 저질렀던 수많은 만행들에 대해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에 정말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용서를 빌기를 바란다. 아직까지 그런 기회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전씨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는 법정 다툼과 관련해서 끝까지 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