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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추왓추] '뉴욕의 왕', 비참한 삶에서 음악을 길어 올리다

입력
2021.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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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기: 할 말이 있어'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왼쪽)가 래퍼 50그랜드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왼쪽)가 래퍼 50그랜드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전 세계에서 팔린 앨범만 3,000만 장이다. 수십 년 음악 활동을 한 노장은 아니다. 활동 기간은 5년 남짓. 선보인 앨범은 고작 2개다. 지상에서 머물다 간 시간은 25년에 불과했다. 굵고도 짧은 삶.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B.I.G·1972~1997)가 랩 역사에 남긴 흔적은 깊고도 진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기: 할 말이 있어’는 짧은 시간을 전력질주로 살다 간, 불우한 천재 래퍼의 삶을 돌아본다.


①뉴욕 빈민가 중 빈민가의 삶

크리스토퍼 월러스는 뉴욕 브루클린 클린턴힐에서 나고 자랐다. 클린턴힐은 뉴욕 빈민가 중 빈민가다. 가로수가 있고, 그럴듯한 다층 주택이 머리고 맞대고 있으나 총격 등 범죄가 빈번한 곳이다.

크리스토퍼의 뿌리는 자메이카 트렐로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10대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 한 남자를 만나 아들 크리스토퍼를 낳았으나 홀로 길러야 했다. 크리스토퍼는 어머니의 관심과 보호 속에 자랐다. 어머니처럼 컨트리를 즐겨 들었고, 매년 여름마다 트렐로니로 여행을 갔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재즈 연주자와 교유하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하지만 험한 환경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반듯하게 자라길 원했으나 크리스토퍼는 다른 길을 걸었다. 10대 중반에 코카인 판매에 나섰다. 이유는 명확했다. 수지맞는 장사였고, 돈이 필요했고, 클린턴힐 청소년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②마약 팔다 기회를 잡다

크리스토퍼 월러스(오른쪽)는 어렸을 때 가톨릭 학교에 다니면서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난다. 넷플릭스 제공

크리스토퍼 월러스(오른쪽)는 어렸을 때 가톨릭 학교에 다니면서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난다. 넷플릭스 제공

어린 크리스토퍼는 거리에서 매주 7,000달러가량을 벌었다. 어머니는 몰랐다. 쉽게 번 돈은 달콤했다. 크리스토퍼는 음악이라는 꿈에서도 멀어졌다. 하지만 재능을 감출 수는 없었다. MC퀘스트라는 이름으로 거리의 음악을 이어갔다. 우연히 랩 배틀을 하다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라임에 우람한 덩치로 위협적인 랩을 구사하는 크리스토퍼는 금세 거리의 스타로 떠올랐다. 음반사 프로듀서가 그를 지켜봤다. 당대 스타 뮤지션 퍼프 대디와 연결시켜 줬다. 퍼프 대디는 데모 테이프만 듣고도 깜짝 놀랐다. “신께 감사할 정도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크리스토퍼는 거리에서 스튜디오로 무대를 옮겼다. 싱글 ‘파티 앤 불시트’가 크게 히트했다. 활동명을 ‘비기스몰스’로 했다가 비슷한 래퍼가 있어 ‘비아이지’로 바꿨다. 1집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뉴욕에서 발원한 랩이 로스앤젤레스에 밀린 상황에서 이스트코스트 힙합을 대변할 새로운 스타 탄생에 대한 갈망도 컸다. 주류에 진입하고도 장애물은 있었다. 크리스토퍼의 헤어진 여자친구가 임신했다. 딸이 생겼다. 급전이 필요했다. 다시 거리에서 마약을 팔 것인가, 1집 앨범 작업에 몰두할 것인가. 퍼프 대디가 중심을 잡아줬다.

③너무 이른 죽음, 전설이 된 이름

퍼프 대디(현재 활동명 션 콤스)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넷플릭스 제공

퍼프 대디(현재 활동명 션 콤스)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넷플릭스 제공

1집 ‘레디 투 다이’는 랩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제목은 ‘죽을 각오’였지만 크리스토퍼는 “살 각오”로 만든 앨범이었다. 뉴욕 빈민가의 비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가사에 대중은 열광했다. 비아이지는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새 아이콘이 됐고, ‘뉴욕의 왕’으로 불렸다.

크리스토퍼는 어릴 적 꿈을 이뤘다. 롤렉스 시계를 차고,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들을 끼고, 두툼한 금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매주 3, 4번 무대에 올랐고, 공연 1회당 1만 달러가 손에 들어왔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상승하던 삶은 급전직하했다. 친구였던 투팍과 오해로 사이가 벌어지면서 비극은 싹텄다. 투팍은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뉴욕에 놀러 왔다가 강도를 당했다. 투팍은 친구에서 라이벌로 부상한 비아이지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스트코스트 힙합 신봉자와 웨스트코스트 힙합 추종자 사이 감정은 험해졌다. 결국 투팍은 총탄에 쓰러졌다.

비아이지는 2집을 만든 후 동서를 가르는 갈등의 골을 메우고 싶었다.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로 공연을 떠났다. 비아이지는 밤거리에서 총알세례를 받았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힙합의 미래를 있게 한”(퍼프 대디) 전설의 최후였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순식간에 떠올라 힙합계를 뒤흔들고 사라진 전설적 래퍼의 삶을 촘촘히 복원한 다큐멘터리다. 1990년대힙합의 역사를 빠르게 전달해 주신 동시에 당시 뉴욕 뒷골목의 삶을 전한다. 힙합에 대한 지식이 적은 사람도, 힙합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유익하다. 사람은 의지와 능력과 재능이 있다면 자신의 꿈을 쉬 실현할 수 있을까, 천재는 빈곤의 구조화에서 자유로울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힙합의 문화적 의미를 되짚기도 한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77%, 시청자 78%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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