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403만 볼리바르→ 4.0 볼리바르
"근본적 경제 문제 해결 없다면 백약 무효"
중남미 베네수엘라가 3년 만에 또다시 ‘100만 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한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살인적 수준의 물가를 잡을 방법이 없는 탓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10월 1일부터 기존 볼리바르 지폐에서 ‘0’ 여섯 개를 빼는 화폐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이날 기준으로, 403만6,000볼리바르 수준인 1달러가 4.0볼리바르가 되는 셈이다. 볼리바르 화폐가치가 100만분의 1로 급감한다는 얘기다.
베네수엘라의 이번 리디노미네이션은 2008년 이후 세 번째다. 2008년 ‘1,000대 1’, 2018년 ‘10만 대 1’의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고액권도 잇따라 새로 발행했지만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이어져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 ‘오일머니 부국(富國)’이던 베네수엘라는 국제 유가 하락과 국영 석유기업 부실 운영 등으로 올해까지 8년 연속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살인적 수준의 초인플레이션도 벌써 4년째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 물가상승률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1년간의 물가 상승률은 무려 2,575%에 달한다. 그나마 2018∼2019년의 100만%대에 비해선 진정된 수준이다.
말 그대로 ‘자고 나면 몇 배씩 뛰는’ 물가 탓에 한 번 장을 보려면 돈뭉치를 싸서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업들도 지나치게 큰 화폐 단위 탓에 회계 처리 등에 곤란을 겪고 있다. 실제 지난 3월 나온 역대 최고액권인 10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현재 25센트(1달러의 4분의 1·약 286원)에 불과하다. 제일 몸값이 높은 지폐로 커피 한 잔조차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또 한 번의 화폐개혁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실효성 있는 경제 안정 대책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본사를 둔 여론조사업체 ‘데이터날리시스’의 루이스 빈센트 레온 대표는 블룸버그에 “통화에 대한 불신과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규모 공공지출 등 경제 불안정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몇 달 안에 같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통화 명칭을 현재의 ‘볼리바르 소베라노’에서 ‘볼리바르 디히탈(digital·‘디지털’의 현지 발음)’로 바꿨다.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위한 변화라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실물 화폐도 계속 발행해 5∼100볼리바르 지폐를 새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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