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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정책의 후유증 벗어나지 못한 남아공

입력
2021.08.07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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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콰줄루 나탈주에서 소요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7월 15일(현지시간) 더반 인근의 한 건물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콰줄루 나탈주에서 소요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7월 15일(현지시간) 더반 인근의 한 건물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24> 아직까지 19세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 중인 남아공


최근 국내외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가를 하나 꼽으라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아닐까 싶다.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의 체포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가 남아공 전역에서 전개된 소식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시위는 폭동으로 이어져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약탈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남아공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공장 및 매장 등에도 피해를 봤다. 사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문가들 내지 남아공 현지 상황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폭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남아공에 남아 있는 오랜 불평등의 앙금이 코로나 19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지하자원 보유한 남아공


유럽인들이 남아공에 가장 먼저 정착한 이유는 남아공의 기후 환경이 인간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무더운 날씨와 드넓은 초원, 그리고 다양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정도다. 하지만 남아공은 이와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남아공을 대표하는 도시인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는 과거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즈음에는 최고 기온이 30℃를 넘지 않는 온화한 기후가 연중 이어지는 날씨였다. 폭우나 가뭄, 태풍과 같은 별다른 자연재해도 없었다.

온화한 기후 덕에 케이프타운 근처에서는 와인용 포도밭이 대규모로 경작되고 있으며,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는 선호하는 와인 산지가 남아공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남아공을 지구 남반구에 있는 유럽 내지 지중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찍이 영국 국영 방송 BBC와 뉴욕 타임스 같은 매체들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관광지 중 하나로 남아공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거점 지역으로 남아공을 선택한 이유가 꼭 날씨만은 아니다. 남아공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더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남아공은 세계 크롬 매장량의 △35.7% △망간 30.3% △형석 13.2% △금 11.1%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5위 다이아몬드 생산국이기도 하다.

철강석 매장량도 풍부하다. 철강산업은 남아공 정부의 꾸준한 인프라 확충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아공 모셀베이(Mossel Bay) 인근에서 석유 10억 배럴과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되어, 향후 관련 산업의 발전마저 기대되는 상황이다.

2013년 12월 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추도식이 열린 요하네스버스의 FNB스타디움에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추모객 중 한 명이 고인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치켜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2013년 12월 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추도식이 열린 요하네스버스의 FNB스타디움에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추모객 중 한 명이 고인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치켜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30년 전 종식된 인종차별 정책의 후유증

남아공의 쾌적한 기후 환경과 풍부한 지하자원은 유럽계 백인들을 대거 이주하게 만들어 오히려 남아공이 비운의 역사를 갖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럽계 백인들은 최근까지도 원주민인 흑인들과 자신들을 철저히 차별하는 인종분리정책을 시행해왔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른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본래 의미가 ‘격리’라는 뜻으로 1948년부터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차별제도이다. 이 제도는 모든 사람을 백인, 흑인, 컬러드(유색인), 인도인 등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렇게 구분된 인종에 따라 출입금지 구역을 지정하거나 거주지마저 구분하는 법적 근거로 사용됐다. 특히 통행증이 없으면 흑인은 자신의 거주지 외 다른 지역을 방문할 수 없었다. 흑인이 통행증을 갖고 있지 않으면 곧바로 법원에 넘겨져 구속된다.

공공시설물 사용 역시 철저히 구분했다. 우체국 등 공공건물이나 해변 등 공공장소의 백인과 흑인의 이용 공간, 출입구 등도 달랐다. 심지어 공중화장실도 각각 다른 출입구를 사용해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관련 법률 중 가장 악명 높은 법률을 꼽으라면 1959년 제정된 반투스탄법(Bantu stan Self-Government Act)이다. 남아공 흑인들도 사실은 여러 부족들로 구분이 된다. 이 때문에 남아공의 공식 언어는 11개나 된다. 반투스탄법은 이러한 남아공 현지 상황을 악용해 줄루, 코사족 등 약 10개에 달하는 흑인 부족들에게 명목상의 자치정권을 부여하겠다며, 각각의 부족이 특정 영토에서만 살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부여한 영토는 원래 해당 부족민이 살고 있는 영토의 10분의 1 수준만 허락하였으며, 이 또한 가장 척박한 땅을 배정했다. 반투스탄법으로 인해 1960년부터 1994년까지 약 350만 명이 생활 터전을 잃고 극빈층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극빈층으로 전락한 계층들은 심지어 남아공 국민이 아닌 외국인 체류자 신분이 부여되었고, 최저 임금 이하의 저임금에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했다.

반투스탄법으로 극도로 열악해진 남아공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 줄 단체 내지 정당을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남아공 백인들이 해당 흑인 정당을 공산주의 정당으로 지칭하며 지속적으로 탄압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4월 27일에 완전 폐지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남아공의 실질적인 독립은 이때 달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온 백인들이 쾌적한 기후 환경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남아공만큼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려운 경제 상황 속 재도약 노리는 남아공


남아공이 이제 막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지 30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 독립국가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남아공에서는 아침에 출근하거나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처음 남아공에 진출한 기업 내지 주재원들은 당혹스러워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최근까지 이어져 온 인종차별 정책 때문이다. 과거 흑인들이 억압받던 시절, 흑인들이 먼저 백인에게 말을 걸거나 하면 버릇없다거나 주제넘게 군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험을 최근까지 당해 왔던 남아공인들은 지금도 흑인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드물다. 20세기형 노예제 내지 신분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 불과 3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도 남아공 곳곳에서는 잔재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남아공의 주요 도시마다 핵심 도심부에는 부유한 백인과 아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외곽 지역들은 흑인 빈민가가 형성돼 있다.

사실 남아공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왔던 국가로 분류된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들도 철저히 흑인들의 억압과 희생으로 달성됐다. 하지만 이후 흑인들의 인권 내지 권익을 본격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경제성장률은 점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2014년 이후부터는 연속 1%대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급기야 2018년 0.8%, 2019년 0.2%로 2년 연속 0%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업률의 경우에도 남아공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실업률은 32.6%에 달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46.3% 수준이다. 이 때문에 남아공의 인구 5,900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최근 남아공 경제의 어려움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후유증뿐만 아니라 남아공 광산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및 파업, 남아공 통화인 랜드화 가치 하락, 정부 부채 증가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남아공 경제가 극히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남아공이 지도상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에 표시되어 있는 국가지만 남아공은 우리에게 각별한 관계에 놓여 있다. 남아공은 일찍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로서 공군대대 826명을 파견한 바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최근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남아공 국민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남아공에 구호품을 전달해 준 바 있다.

국내에 체류 중인 남아공 국민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영어 강사용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남아공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7개 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체류 중인 남아공인들은 2019년 기준 3,000명에 달한다. 이는 여타 아프리카 국가와 비교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국가 중 우리 교민이 가장 많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진출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아공이 여타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가장 산업적 인프라를 잘 갖춘 나라일 뿐만 아니라 제철, 기계, 화학, 섬유,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실질적인 독립을 달성한 남아공은 코로나 19로 또다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과거 우리를 도와준 남아공 국민들에게 한국인들은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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