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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깨달았다…지금 안 놀고 대체 언제 놀 건가

입력
2021.08.06 09:00
수정
2021.08.06 10: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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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65>편성준

26년 광고쟁이로 살다 어느 날 ‘사표’
SNS에 ‘백수 부부’ 사는 얘기 써 눈길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게 노는 삶”

26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2019년 사표를 낸 뒤 ‘노는 삶’을 책으로 쓴 편성준 작가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의 집은 한옥을 개축한 것이다. 이한호 기자

26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2019년 사표를 낸 뒤 ‘노는 삶’을 책으로 쓴 편성준 작가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의 집은 한옥을 개축한 것이다. 이한호 기자

애초에 계획적인 삶과 거리가 멀었다. ‘미래의 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어릴 때도 ‘장래희망’ 같은 게 있을 리가. 고교 시절 수학, 과학에는 영 재주가 없어 인문계를 택했고, 담임 교사가 “국문과는 안 된다”고 해 영문과에 들어갔다. 대학 4년이 준 소득은 ‘아, 내가 영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구나’.

“짧은 글을 쓰고 돈 받는 일인 줄 알고” 카피라이터가 됐는데, 겪어 보니 정반대의 삶. 대중이 접하는 광고 카피 몇 줄은 무한경쟁의 결과물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카피들을 쓰느라 쏟아 부은 에너지를 보상받을 길도 없었다.

26년을 ‘광고쟁이’로 살다가 어느 날 불쑥 사표를 낸 건, 그러니 찰나의 결심은 아니다. 26년간 소모해온 자신을 살리려는 본능 아니었을까. 그의 그런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아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죽했으면 이러겠어”라며 동의한 이유다. 출판 기획자로 일하던 아내는 그보다 먼저 회사를 그만둔 터였는데도,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그를 다독였다.

퇴사를 하고서 그가 매진한 건 글쓰기였다. 하기는 날을 새며 광고 카피를 쓸 때에도 그는 늘 곁눈질을 했다. 나우누리(1990년대 PC통신망)부터 시작해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티스토리, 브런치,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들을 무대로 줄기차게 사는 얘기를 써왔던 거다. 회사도 관둔 김에 아내가 글쓰기를 부추겼다. 그는 아예 한 달간 제주도로 내려가 초고를 써왔고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로 지난해 10월 세상에 나왔다. 출간 이후 열 달 동안 1만 3,000여 부가 꾸준히 팔렸다. 거기다 한 드라마 제작사가 시트콤으로 만들겠다며, 책의 판권을 사기도 했다. ‘부부가 다 놀며 사는 삶’을 둘러싼 세상의 호기심이다.

그가 ‘놀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삶이다. 회사에 다닐 때와 다른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그 중심엔 ‘글쓰기’가 있다. 강의와 워크숍으로 글쓰기, 책 쓰기를 가르치고 전파한다. “글을 쓰면 삶이 달라진다”는 걸 그 자신이 깨달았기에. “남의 돈으로는 남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카피라이터 시절보다 돈은 부족하지만, 놀 궁리에 행복한 작가 편성준(55)씨를 7월 28일 만났다. 그의 한옥 대문 한쪽엔 ‘성북동小幸星(소행성)’이라는 문패가 붙어있었다. ‘작지만 행복한 별’이라는 뜻으로, 편 작가가 지었다.

‘어떻게 지금 미래를 설계하지’

그는 10년 전 아내를 처음 만나 교제할 때부터 서로 “책 한 권 쓰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애초 제목은 ‘늦은 연애는 없다’였다. 40대 중반에 결혼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퇴사 이후 아내의 제안으로 콘셉트를 바꿨다. 이한호 기자

그는 10년 전 아내를 처음 만나 교제할 때부터 서로 “책 한 권 쓰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애초 제목은 ‘늦은 연애는 없다’였다. 40대 중반에 결혼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퇴사 이후 아내의 제안으로 콘셉트를 바꿨다. 이한호 기자

-책 제목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가 참 눈길을 끌어요.

“지금 사는 이 한옥 개축 공사를 할 때 사람들이 ‘뭐 하는 분들이냐’라고 물으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곤 했거든요. 그 말을 제목으로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처음엔 망설였죠. 철없어 보이거나 젠 체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그런데 결국엔 이 제목이 가장 나은 거예요. ‘대체 지금 아니면 언제 놀려고 하느냐. 계속 미루기만 하면 놀지를 못 한다’는 책 내용과도 잘 맞고요.”

편 작가 부부가 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한옥은 꽤 유명하다. 80년 된 구옥을 멋스럽고 편리하게 리모델링해 신문, 잡지, 방송에 여러 번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고정적인 수입이 없을 때 덜컥 사서 고친 집이었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빚을 몽땅 졌지만, 그가 지은 ‘성북동소행성’이란 이름처럼 이 집에서 작은 행복을 만들고 누리며 살고 있다.

-책 낼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나요?

“아내를 만난 지는 10년, 결혼한 지는 8년 됐거든요. 예전부터 둘이서 ‘책 한 권 내자’고 했었어요. ‘늦은 연애는 없다’라는 콘셉트로 우리 사는 얘기를 써보자는 거죠. 미루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아예 제주도로 가서 한 달간 초고를 썼어요. 아내가 ‘다르게 접근해보자’고 의견을 낸 거죠.”

그의 책은 이들 부부가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큰 줄기다. 거기에 인생관이 녹아있다.

-책에 보면 여러 실수담이 나오는데, 어릴 때부터 그렇게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나요?

“아내가 저더러 ‘비가 오는데 우산을 택시에 두고 내리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해요. 하하. 어릴 때부터 철두철미한 스타일은 아니었죠. 러닝셔츠만 입고 학교 가다가 집에 되돌아오는 일도 많았고요. 에니어그램(9개의 성격 유형) 테스트를 해보니 저는 ‘평화주의자형’, 아내는 ‘완벽주의자형’이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누군가와 각을 세우기도 싫어하고, 뭘 하지 못해 안달을 내거나 하지도 않는 성격인 거죠.”

-어릴 때 장래희망은 뭐였어요.

“별로 꿈 같은 게 없었어요. ‘미래에 뭐가 돼야지’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결혼도 하지 않으려고 했었죠. 20대에 누군가를 사귀어서 결혼을 꿈꾸는 게 신기했어요.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일찍 미래를 설계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죠.”

‘오해’로 시작한 카피라이터

그는 요즘도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꾸준히 길고 짧은 글을 올린다. 캘리그라피도 그의 취미 중 하나다. 자신을 공처가로 상정한 ‘공처가의 캘리’ 연재는 아내와의 대화가 주된 소재다. 편성준 제공

그는 요즘도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꾸준히 길고 짧은 글을 올린다. 캘리그라피도 그의 취미 중 하나다. 자신을 공처가로 상정한 ‘공처가의 캘리’ 연재는 아내와의 대화가 주된 소재다. 편성준 제공

-카피라이터는 왜 하게 됐나요?

“일단 멋있어 보였거든요. 또 카피는 짧으니까 조금 쓰고도 돈을 받는구나 생각했던 거예요. 하하.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아니었죠. 대학생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광고회사에 들어갔는데 현실은 늘 고등학생처럼 야근을 했어요.”

-카피라이터라는 일은 어땠나요.

“광고란 게 복잡한 무언가를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거잖아요. 그런 매력은 있지만, 항상 누군가와의 경쟁을 통해 만들어져요. 또 최종 결과물을 고르는 사람이 늘 옳은 걸 택하는 것도 아니지요. 클라이언트의 마음이니까요.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까지 감안해서 안들을 만들어야 해요. 그에 들어가는 노력이 너무 소모적이었죠.”

-무슨 뜻인가요?

“하나의 광고를 따내기 위해 여러 회사가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한다고 쳐요. 그럼 회사마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준비를 해서 가거든요. PT에서 선택이 돼도 광고 카피는 더 좋은 걸 다시 만들어야 해요. 그것도 감지덕지하면서요. ‘그래도 결국은 우리가 할 거 아니야. 고생 좀 더 하면 되지’ 하는 식이에요. 이거는 마치 신춘문예에서 시가 당선됐는데 ‘아, 이 시 좋았어!’ 해놓고 ‘다시 한 편 써 봐’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으니 견디기 힘들었고 지쳤죠.”

-과정이 정말 소모적이네요.

“맞아요. 아이디어도 하나만 내서는 안 돼요. 늘 클라이언트가 선택할 수 있도록 복수의 후보를 가져가야 하죠. 경쟁 PT를 하면, 클라이언트로서는 여러 회사의 여러 후보들을 받아보는 거예요. 클라이언트가 거절한 카피들을 만드는 데 들인 노력은 보상받지 못하죠.”

카피 만들면서도 했던 ‘딴짓’

그에게 캘리그라피를 요청했다. 편한 펜을 집어 그가 짧은 글을 쓰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그에게 캘리그라피를 요청했다. 편한 펜을 집어 그가 짧은 글을 쓰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그래도 카피라이터를 그렇게 오래한 걸 보면 글 쓰는 걸 좋아했나 봐요.

“네,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로 전국 단위에서 상을 탄 적도 있죠. 고등학교 때도 시화전에 글을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광고 카피는 엄밀히 말하면 글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메시지죠. 그래서 광고 카피를 만들 때는 글을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대신 다른 글들을 썼죠.”

-어떤 글요?

“돈 안 되는 글요. 그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어요. 싸이월드 같은 데에 독후감을 써서 올리기도 하고, ‘음주일기’ 같은 걸 연재도 했어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나우누리 시절부터 썼죠. 어딘가에 글을 올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아내와 우연히 만나 교제하고 결혼에 이르게 된 것도 그 ‘음주일기’ 덕분이다. 글 몇 편을 본 아내가 그에게 매력을 느낀 거다. 단골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아내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겠네요.

“그렇죠. 광고는 효율이 높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하는 생각이나 쓰는 글은 돈 안 되는 것일수록 재미있었어요. 글도 ‘괜히’ 써본 게 더 좋고요. 그런데 광고업계는 ‘괜히’라는 게 용납이 안 되는 곳이었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아무 얘기나 써도 된다는 거예요.”

-책에는 과거에 “유흥비 벌려고 회사에 다닌다”고 말했다고 썼지만, 일에서 오는 보람도 있었겠죠.

“협업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 나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보람도 있고요. ‘그 아이디어 괜찮네’라는 동료들의 말이 가장 큰 칭찬으로 느껴졌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거니까요. 카피라이터로서 나는 그렇게 잘하지 못했지만, 못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남들보다 더 근성을 발휘하거나 능력이 낭중지추(囊中之錐)였어야 하는데 그러진 못했죠.”

그는 카피라이터 시절 얘기를 하다 자신이 ‘반성문 전문 카피라이터’로 불렸다고 했다. 광고가 나간 뒤 항의가 들어와 사과문을 내야 하는 때가 있는데 그걸 쓰는 것도 카피라이터의 일이었던 거다. 예를 들어, 카피에 특정 난치병을 거론해 환우회에서 사과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광고주는 그 반성문 카피도 경쟁을 시키는데 이상하게 그가 쓴 것이 잘 뽑혔단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냄새가 글에서 풍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성정이 카피라이터를 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아닐까.’ 잠시 생각이 머물렀다.

나를 지키려고 낸 사표

그는 카피라이터로서 낭중지추가 못 됐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그의 카피는 많은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다. 끝말잇기로 이어지는 훼스탈 카피나, ‘커피가 착해서 커피에 반하다’라는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카피가 대표적이다. 이한호 기자

그는 카피라이터로서 낭중지추가 못 됐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그의 카피는 많은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다. 끝말잇기로 이어지는 훼스탈 카피나, ‘커피가 착해서 커피에 반하다’라는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카피가 대표적이다. 이한호 기자

-40대에도 사표를 낸 적이 있다면서요.

“네, 2013년에요. 너무 힘들어서요. 부양 가족도 없으니 일단은 그만둔 다음에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냈죠. 두 달간 여행을 다녀온 뒤 얼마 안 돼서 다시 일을 하게 됐어요. 페이스북에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가 놀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그게 일자리로 이어졌죠.”

-2019년 사표를 냈을 때는 어땠나요. 책에는 ‘자존감이 심하게 상하는 일을 당하고’라고 썼는데 이유가 궁금해요.

“그때 다니던 회사 사장이 (광고계) 후배였어요. 그런데 회의를 하다가 저와 다른 팀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니) 사흘씩 휴가원을 내고 쉬면서 생각을 좀 해 봐라. 자기가 왜 광고를 하는지’라고 하는 거예요. 후배들만 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회사 다니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물론 그 전에도 힘들었어요.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순간이 많았으니까요.”

-26년간 사표 내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그때 아예 그만둬야겠다 결심한 이유는요.

“할 만큼 했더라고요.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이 찼다 싶기도 했고요.”

-카피라이터로 일한 26년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 성향에 맞는 직업이었어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한 것도 행운이었죠. 하지만 나는 그런 경쟁체제 속에서 일하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집에 와서도 일 생각에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고요. 그러니 광고 카피가 아닌 글을 SNS에 쓰면서도 ‘이때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이걸 하고 있구나’ ‘혹시 클라이언트가 보면 뭐라고 하겠구나’ 같은 죄책감, 스트레스에 시달렸죠. 그래도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한 덕에 남들보다 쉬운 언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유머와 페이소스(연민)가 있는 글요.”

-사표를 내니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뭐였나요.

“좋은 점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거였죠. 새벽에 일어나 혼자 노는 걸 좋아하거든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요. 회사에 가지 않으니 나중에 졸리면 자면 되고요. 좋지 않은 건 돈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어느 수준의 수입을 만들려고 아내와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있어요.”

독서 모임 ‘독하다, 토요일’, 책쓰기 워크숍, 글쓰기 강연 같은 이벤트들이다.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

그는 첫 직업으로 카피라이터를 택한 이유를 말하면서 “그러면 경박하게 살아도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볍게 물 흐르듯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 느껴졌다. 이한호 기자

그는 첫 직업으로 카피라이터를 택한 이유를 말하면서 “그러면 경박하게 살아도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볍게 물 흐르듯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 느껴졌다. 이한호 기자

-출간한 책도 그렇고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들을 보면 그건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나를 글로 쓰니 좋은 건 뭔가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흔히 ‘내 얘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넘어’라고 말하지만, 직접 써보면 다르거든요. 같은 사건도 여러 방향으로, 다르게 쓸 수 있고요.”

-남에게 자신을 보이는 게 쑥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쓸 때는 그게 어떤 글이든 타인이 읽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고 쓰게 되거든요. 글은 누구에게는 보여줘야 가치가 있죠. 다른 이의 피드백 덕분에 글이 더 좋아질 수도 있고요.”

-글쓰기를 전파하는 이유는 뭔가요.

“글을 쓰면 삶이 달라져요.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그 생각을 글로 썼을 때의 차이가 커요.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글로 써보라고 하는 이유도 그런 거죠. 단순해져요. 게다가 글을 쓰면 쓰는 대로 살게 되죠. 써보니까 알겠어요. 바른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글로 속이려고 해도 잘 안 써지거든요.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죠.”

-책 내용 중 “아내에게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말자고 말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그렇게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예전에 들은 얘기 중 이런 게 있어요. 어느 대기업 부회장이 어떤 술자리에서든 두 잔 이상 마시지 않는데 그 이유가 ‘언제 회장님이 찾을지 몰라서’라는 거예요. 얼마나 비참해요. 더 참고,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말에 속지 말자고 생각했죠. 자본주의가 ‘이제 됐으니 그만해라’라고 말하는 법은 없거든요.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게 역량을 늘려야 해요.”

미래의 행복은 불확실하다

“글을 쓰면 삶이 달라져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길 바라는 이유다. 이한호 기자

“글을 쓰면 삶이 달라져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길 바라는 이유다. 이한호 기자

-집 이름대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나요.

“네, 큰 행복은 잘 오지 않아요. 허망하기도 하죠. 살 만하면 죽는다고들 하잖아요. 그걸 위해 소진했으니. 그때 그때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수밖에 없어요.”

-50대인데,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지금이 제일 행복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걸 ‘놀고 있다’고 표현한 거죠.

“맞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의미가 아니죠. 함부로 놀자는 뜻도 아니에요. 먹고살려고 일에만 매진해왔다면, 어느 순간에는 멈추고 곁눈질도 좀 하면 좋겠다는 뜻이죠. 제가 그런 삶에 자극이 됐으면 해요.”

-행복을 느끼는 감수성이 예전보다 더 높아진 건가요.

“그렇죠. 내가 어떤 얘기를 하든 받아주는 아내가 있는 게 참 든든하기도 하고요.”

-행복의 감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한테 내가 어떻게 비칠지 너무 염두에 두지 않았으면 해요. ‘남들 눈에 사람 구실 하는 걸로는 보여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점점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고요. ‘자칫 잘못하면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에서 좀 벗어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감을 더 잘 느끼게 되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저희 부부는 ‘나중에 같이 죽자’ 이렇게 말하곤 하거든요. 애 없이 둘이서 큰 변화 없이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또 아내는 기획하는 걸 좋아하고, 저는 쓰는 걸 좋아하니 함께 그런 일을 하면서 세상에 소소한 영향을 주면서 살 수 있으면 해요.”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해온 삶의 도가 있다면요.

“‘괜히 우는 소리 하지 마라.’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해주신 말씀이에요. ‘세상아, 내 불행을 알아줘’ 해봤자,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어요. 사람들이 ‘쟤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라고 하는데, 실제론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게 낫다고 생각해요. 고뇌하는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요. 인생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의 책에는 갖가지 실수담이 등장한다.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잃어버린다거나, 친구 부친상에 운구를 해주기로 해놓고 엉뚱한 장례식장에 간다거나(심지어 이미 문상까지 다녀온 곳인데), 비 오는 날 택시에 우산을 두고 내리는 일 같은 것들이다. 학창시절 일요일에 학교에 간 일이나 공항 검색대에 트렁크를 두고 온 일(심지어 검색대에서 트렁크를 열어젖히고 요란하게 수색을 당했다) 같은 건 약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일화를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고 느껴지기보다, 친근함이 더해진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같은 생각.

자신을 그렇게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건, 어쩌면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노력 아닐까. 그의 말이 ‘당신, 인생을 너무 무겁게 살아온 건 아닌가요?’라는 질문처럼 들리는 이유다. 글을 잘 쓰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데, 인생도 잘 살려면 힘을 빼볼 일이다.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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