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Seeing is believing)."
미국 에릭 칼 그림책 박물관은 지난달 17일부터 열리고 있는 '스피치리스(speechless·말없는)' 전시 안내문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932년 이후 주목할 만한 글 없는 그림책을 모은 전시로, 이 같은 형태의 책이 가진 강렬한 메시지와 예술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 전시에 포함된 책 중 하나는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이수지 작가의 '파도야 놀자'다. 출간된 2008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우수 그림책'으로 뽑혔다.
이 작가의 신작 '여름이 온다(비룡소 발행)' 역시 글은 최소화하고 그림으로 가득 채운 책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모티프로 아이들의 물총 싸움 등 파란색이 중심이 된 그림 등이 148쪽에 걸쳐 펼쳐진다.
최근 글 없는 그림책의 주목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여름이 온다'처럼 청량감 있는 이미지를 강조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책장을 펼치면 여러 빛깔의 파랑이 시선을 끌어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여름의 그림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수영이불(재희 지음·사계절 발행)'은 수영을 한껏 즐기는, 어느 여름밤의 시원한 꿈을 그린다. '나는 수영이 좋아요'라는 짧은 글과 노란 수영모를 쓴 주인공이 파란 물결을 가르는 그림으로 시작하는 책은 수영하는 몸짓과 물방울, 물보라 등을 다양한 색감의 파란색으로 표현했다.
'물속에서(박희진 지음·길벗어린이 발행)'는 펜과 물감으로 그린 수영장의 푸른 물과 물속 세상이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책이다. 수영장에 가자고 졸라대는 손녀의 성화에 못 이겨 수영장에 온 할머니는 괜히 왔다고 투덜거리지만 수영장 구석구석은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싫다"고만 하던 할머니는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몸이 가벼워짐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빛이 사라지기 전에(박혜미 지음·오후의쇼묘 발행)'는 가로로 긴 판형의 책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가득한 책이다. 노란 보드를 안은 서퍼의 모습과 함께 파란 바다와 하얀 포말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파도타기(장선환 지음·딸기책방 발행)'는 거대한 파도의 움직임을 강조한 그림이 눈에 띄는 책이다.
작가는 서퍼가 적당한 파도를 기다려 열심히 팔을 저어 나가는 모습을 통해 기회를 포착해 전진하는 인생을 그리고자 했다. 파도 위에 오르기 전까지 서퍼가 느끼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책의 전반부에서는 어두운 파랑을, 서퍼가 보드 위에 오른 책 후반부에는 한결 경쾌한 느낌의 파랑을 썼다.
볼로냐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두 차례 선정됐던 이명애 작가의 신작 '휴가(이명애 지음·모래알 발행)'는 작가의 휴가 경험을 녹인 책이다.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마을을 배경으로 바다, 계곡, 노을 등의 자연 풍광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그렸다. 휴가지에서 몸과 마음이 서서히 이완되고, 마침내 온전히 충전되는 과정을 이미지만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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