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라와 11년 만에 집을 샀다. 이제 막 지은 빌라다. 동원(김성균) 가족은 입주만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집이 심상치 않다. 바닥에 구슬을 두면 알아서 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부실시공일까. 동원은 입주자들을 모아 대책을 모색하나 다들 못 들은 척한다. “집값 떨어뜨릴 일 있냐”는 것.
제목이 예고하듯 재난이 결국 일어난다.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며 빌라가 통째로 지하로 떨어진다. 동원의 직장 동료 김 대리(이광수)와 은주(김혜준)는 집들이를 위해 놀러 왔다가 동원 등과 함께 지하 500m 아래로 추락해 고립된다. 이삿날부터 동원과 신경전을 벌이며 기이한 교류를 이어가던 이웃 만수(차승원) 등도 재난을 맞는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배우만으로 ‘싱크홀’의 온도를 예상할 수 있다. 차승원과 이광수는 엄숙, 근엄, 진지보다는 웃음에 더 가깝다. 악역을 종종 맡는 김성균은 코믹에도 능통하다. 예상대로 ‘싱크홀’은 비장미나 극한의 긴장으로 관객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앞부분은 아예 코믹에 방점을 찍는다. 작정한 듯 밝고 활기차거나 장난스러운 음악이 깔린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인간미를 지닌 만수가 웃음의 6할 정도를 책임지고, 동원과 김 대리가 나머지 웃음을 채운다. 후반부는 재난에 집중하나 역시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비극이 끼어들지만 밝은 분위기를 누를 정도는 아니다. ‘싱크홀’에 대한 적절한 수식은 ‘코믹 재난 영화’다.
한국 재난 영화의 특징은 ‘골고루’다. 재난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기 마련이고, 돈을 회수하기 위해선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하니까. 웃음 한 스푼, 눈물 한 스푼, 감동 한 스푼을 볼거리나 서스펜스와 버무려 관객의 여러 욕구를 만족시켜 주려 한다. 1,000만 영화 ‘해운대’(2009)도, 942만 명이 극장에서 본 ‘엑시트’(2019)도 엇비슷한 재료로 나름 황금 레시피를 적용해 다종다양한 관객을 만족시켰다. ‘싱크홀’은 ‘해운대’와 ‘엑시트’가 걸어간 길을 밟고 싶어한다. 재난이 쓰나미와 도심 가스 테러에서 싱크홀로 바뀌었을 뿐이다.
‘싱크홀’이 자기만의 레시피로 그럴듯한 맛을 내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어야 할 듯하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잘 이어 붙지 않는다. 웃음의 농도가 과하게 진해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은주가 펼치는 과도한 액션은 잠깐 폭소를 부를 수 있을지 모르나 느닷없다. 처음부터 ‘소림축구’(2001) 같은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모를까. 차승원은 여전히 느물거리는 연기로 웃음과 정감을 불러낸다. 뭐든 바른 생활인 동원은 김성균의 예리한 연기로 설득력을 얻는다. 빌라가 통째로 지하로 내려앉는 모습은 제법 스케일 있고, 스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재료가 좋다고 음식이 항상 맛있지는 않다.
‘화려한 휴가’와 ‘타워’ 등을 흥행시킨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17년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아직 개봉하진 못했다. 출연 배우에 대한 성폭력 고발, '미투'가 있어서다. 1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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