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이었던 北과 군 통신선 '모닝콜' 국보법에 안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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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적'이었던 北과 군 통신선 '모닝콜' 국보법에 안 걸리나

입력
2021.08.02 12:00
수정
2021.08.0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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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군 통신선의 역사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정전협정 64주년인 2017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북한 병사들이 정전기념 행사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는 참전국 대표단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전협정 체결 68주년 ‘깜짝 이벤트’는 남북 연락채널 복원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남북이 “그간 단절됐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전격 선언한 겁니다. 지난해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차단한 지 13개월 만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4월 판문점 선언 3주년을 계기로 수차례 친서를 교환한 결과입니다. 68년 전 한국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한 날, 남북이 중단했던 소통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지요.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통일부가 관리하는 판문점 연락채널은 물론, 군 통신선도 복구됐습니다. 국방부는 이날부터 오전 9시와 오후 4시, 두 차례씩 정기통화도 재개한다고 밝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북한군과의 ‘모닝콜’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난달 27일 오후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국방부 제공

이쯤에서 문득 의문이 생깁니다. 남북 교류를 촉진하는 통일부야 그렇다 쳐도 우리 군이 한때 ‘주적’이었던 북한군과 어떻게 매일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됐는지 말입니다. 국방백서에 ‘북한은 주적’이라고 명시한 건 2000년까지입니다. 이후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현됐다가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을 계기로 ‘북한군은 적’이란 표현이 재등장했고 2018년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현재 국방백서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포괄적으로만 명시돼 있습니다. 언제든 ‘북한은 적’이란 개념이 부활할 수 있는 환경인 거지요.

좀 엉뚱하지만, 더 나아가 북한군과의 통화가 ‘반국가단체(북한)의 구성원과 회합ㆍ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국보법)의 망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 또한 궁금해집니다. 1980년 말 시작된 공산권 국가의 붕괴로 체제 경쟁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면서 국보법의 수명이 다하는 듯했지만, 엄연히 현재도 살아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통행 지원 위해 최초 설치

2000년 9월 26일 당시 북한 김일철(가운데) 인민무력부장이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을 마치고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제주=오대근 기자

군 통신선이 처음 깔린 건 군사적 이유가 아닌 남북 교류 목적이었습니다. 정전 이후 남북 정상이 역사적으로 처음 만난 2000년 정상회담의 산물로 개성공단이 출범한 것이 직접적 계기였지요.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면 매일 육로로 남측 근로자들이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이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해선 군 당국의 승인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68년 전 정전협정 당시 향후 군사분계선(MDL)을 넘으려면 군 당국끼리 출입자 명단을 상호 통보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정상, 남측의 최종 승인권자는 유엔군사령관(폴 라캐머러 한미연합사령관), 북측은 인민군 총사령관(김정은 위원장)입니다. 비무장지대(DMZ) 관할권이 우리 군 당국이 아닌 유엔군에 있기 때문인데요. 다만 2000년 9월 제주 서귀포에서 있었던 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시작으로 이어진 군사실무회담에서 북측과 ‘남북관리구역’ 설정에 합의하고, 이후 유엔과의 협의를 거쳐 DMZ 관리권은 우리가 가져오게 됐습니다. 쉽게 말해, 입ㆍ출경 승인 등의 실질적 관리권을 우리가 행사하게 됐다는 겁니다. 물론 최종 권한은 여전히 유엔군에 있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단 방문을 불허한 2018년 10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대표단이 귀환 차량을 맞이하고 있다. 오른편에는 이날 대표단이 방북 때 가져가려던 식량이 보인다. 파주=김주성 기자

관리권을 가져온 우리 군 당국이 개성공단 출입 인력 명단을 북한군에 보내려면 별도의 통신선이 있어야 합니다. 유엔군의 판문점 채널을 쓸 순 없으니까요. 이에 남북은 2002년 9월 열린 제7차 남북군사 실무회담에서 양측 국방장관이 서명한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ㆍ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에 근거해 그해 9월 경기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에 서해지구 군 통신선(전화선ㆍ팩스선ㆍ예비선 등 3개 회선)을, 이듬해 12월에는 강원 고성 CIQ에 동해지구 군 통신선(3개 회선)을 설치합니다. 동해 군 통신선이 마련되면서 그 무렵 뱃길을 통하던 금강산관광도 육로로 이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서해 군 통신선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측 인원이 육로로 평창에 올 당시에도 활용됐습니다.

국가보안법 위에 남북교류협력법

2003년 2월 5일 강원 고성에서 금강산육로관광 사전답사를 위한 차량이 대기 중이다. 고성=홍인기 기자

국보법 8조는 북한 구성원과의 통신 등 연락을 금하면서도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점을 알면서’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그해 12월, 형법(1953년)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당시 국가보안법에는 없던 내용입니다. 1990년대 초 소련(현 러시아)까지 붕괴하자 체제 우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방정책을 실시한 노태우 정부에서 1991년 5월 국보법을 개정하면서 단서가 추가된 겁니다. 군 통신선을 통한 북한군과의 접촉은 엄연한 공무이고,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목적도 없기에 국보법에 저촉되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군 당국이 민간인의 북한 방문을 지원하는 건 어떨까요. 이 역시 국보법에서 금지하는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북한)으로의 이동’을 도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북한으로 가는 수백 마리의 소들 중 한 마리에게 연결시킬 끈을 잡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답은 1990년 만들어진 ‘남북교류협력법’에 있습니다. 남북 간 교역과 교류를 촉진하는 이 법을 제정할 당시 심의 과정에서 ‘국보법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이에 3조에 ‘남북 간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관해서는 다른 법에 우선해 이 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못 박은 겁니다. 일종의 특별법인 셈이지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북한을 ‘반국가단체이면서도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당사자’라고 인정했듯, 북한의 이중적인 법적 지위가 상호 모순된 법을 만들어낸 거지요.

1998년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아무 논란 없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정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소떼 방북사건’ 당시에는 군 통신선이 없었기에 우리 군이 아닌 유엔군이 판문점 직통전화로 북측에 통보했습니다.

“여기는 백두산, 한라산” 함정 간 소통도

1998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북측으로 향하는 소떼. 한국일보 자료사진

더구나 군 통신선을 통한 소통은 절제되고 최소화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우리 군이 하루 두 차례 북한과 하는 정기통화는 통신선이 제대로 살아있는지 점검하는 시험통화입니다. 특별한 메시지가 오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통화를 재개할 당시 서해 군 통신선 교대인원은 “네, 여보세요. 남측 000입니다. 그쪽 신호와 통화 음질 양호합니까?”라고 했는데요. 매일 이 같은 수준의 대화 내용만 오가는 겁니다.

군 당국 간의 공식적인 메시지는 주로 팩스로 보냅니다. 통화로 하면 북한이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르는 위험이 있습니다. 팩스 문구 역시 현장에서 만들어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 대북정책관의 통제하에 나갑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처럼 남북 군인들 간 사적인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거지요.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등 국방위원들이 지난해 9월 19일 소연평도 남방 해상에서 북한군에 피격 사망한 공무원 수색 작업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군 당국이 수색할 당시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해 북한 함정과 교신을 시도했지만 북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국회사진기자단

남북 통행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동ㆍ서해 군 통신선과 달리 군사적 목적으로 생긴 소통 채널도 있습니다. 2004년 6월 제2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성사된 6ㆍ4 합의로 서해우발충돌방지 통신선을 개설하고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해서도 양측 함정이 소통하기로 한 겁니다. 국제상선공통망은 민간 선박을 포함, 모든 선박들 간 소통이 가능한 ‘오픈 채널’인데요. 이 채널의 공용주파수(156.8㎒)로 상호 의사를 교환할 수 있게 한 겁니다. 남북한 함정의 호출 부호는 각각 ‘한라산’과 ‘백두산’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측 함정에서 “여기는 한라산”이라고 하면 북측 함정이 “여기는 백두산”이라고 응수하는 식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남북 간의 전용 핫라인은 아니지만 소통할 수 있는 채널 중 하나인 셈입니다.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함정의 척수를 교환하는 차원의 ‘서해우발충돌방지선(3개 회선)’은 2005년 8월 설치됐는데요. 2009년 동(銅)케이블을 1개 선로에서 10만 회선가량 뽑아낼 수 있는 광(光)케이블로 교체하면서 서해 군 통신선과 동일한 선로를 쓰게 됐습니다.

남북 간 군 통신선 현황.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현재까지 만들어진 군 통신 채널은 서해 3개, 동해 3개, 우발방지 목적 3개로 총 9개지만, 실제 선로는 두 개입니다. 광케이블화 작업으로 서해지구 1개, 동해지구 1개씩 통합하게 된 겁니다. 앞으로 추가 채널이 생기더라도 통신선을 새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설치된 광케이블에서 추가로 뽑아내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유엔군사령부는 2020년 한 해 동안 판문점에 설치된 '핑크색 직통전화'를 통해 북한에 총 86건의 통지문을 전달했다고 올 1월 1일 밝혔다. 사진은 유엔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직통전화 사진. 유엔사 페이스북 계정

우리 군 외에 DMZ에 주둔하는 유엔군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군사 당국과 소통하는 판문점 직통전화가 있습니다. 과거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할 때 북측에 훈련 일정을 통보하는 수단이었는데요. 북측이 일방적으로 스위치를 꺼 놓으면 JSA에서 유엔군이 핸드마이크로 북측을 향해 훈련 일정을 육성으로 외쳤습니다. 다만 2019년부터는 유엔군 차원에서 한미훈련 일정 통보는 안 하고 있습니다.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내린 결정입니다. 북한이 남측 언론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서 일정을 다 아는데 이 같은 통보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남북 국방장관 간 직통 채널은 ‘아직’

서욱(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원인철 합참의장이 6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성공단 폐쇄와 금강산관광 중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남북 간 통행은 없지만 군 당국은 통신선 부활로 군사 긴장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과 같은 우발적 사건이 벌어질 경우 사태 악화를 막을 소통 창구가 복구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양측 군 수뇌부 간 직통 채널은 현재도 부재한 상태입니다.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에 군 당국자 간 핫라인 설치가 담겼지만 결국 불발됐습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카운터파트인 김정관 조선인민군 인민무력상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면 장관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군 통신선을 통해 북측에 보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원인철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 간 소통도 마찬가지고요.

남북 교류를 담당하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직통 라인도 없는 마당에, 군 당국 핫라인 구축은 시기상조란 이야기가 나올 법하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군 당국 간 직통 채널이야말로 더 시급한 사안이라고 합니다. 사소한 오해로 생길 수 있는 긴장 유발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 수단이란 것이죠. 9ㆍ19 군사합의 등 북측이 우리와의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려 할 때마다 경각심을 갖게 할 수단이기도 하고요. 군사 당국 간 직통 핫라인 설치를 '깜짝 뉴스'로 발표할 날이 언제 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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