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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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
Her View : 여성의 관점
(18) 올림픽과 여성 (7월 29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2020 도쿄올림픽의 막이 올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말도, 탈도 많았지만 전 세계 선수들을 향한 응원 열기는 뜨거운데요. 허스토리는 여성 스포츠인들의 소식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올림픽을 관람하고 있어요. 9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여성 궁사들, 9년 만에 메달을 안겨 준 펜싱 여자 에페팀, 비록 16강에서 탈락했지만 나이를 잊게 하는 멋진 경기를 보여준 신유빈 선수 등 많은 여성들의 소식에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답니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여성 선수들에게 더 이상 장벽이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차별이 곳곳에 잔존하고 있어요.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남자팀만 있던 양궁부에 직접 찾아가 "나도 활 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여성들부터 이들에게도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까지, 이번 주 허스토리에서는 도쿄올림픽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①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올림픽?
1896년 열린 첫 근대 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는 0명. 스포츠는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지만, 모든 올림픽 참가국이 여성 선수를 출전시킨 건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 일이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4년 여성 선수 참가 비율을 50%로 늘리고, 여성의 참여를 촉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올림픽 어젠다 2020'을 채택하며 '성평등한 올림픽'을 기치를 내걸었는데요.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까요. 도쿄올림픽 여성 참가 비율은 48.8%에 달합니다. 한국은 232명의 선수 중 104명(44.8%)이 여성이에요. 개회식에서 참가팀 전부 (205개국)가 여성과 남성 공동 기수를 내세운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기도 합니다.
② 길을 만드는 올림픽의 여성들 Ⅰ
여성과 남성 선수 비율은 1대 1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덜 개척된 자리가 있어요. 바로 심판입니다. 도쿄올림픽에는 4인의 여성이 '국가대표 심판'으로 참가했어요. 현숙희(48ㆍ유도) 강주희(50ㆍ배구) 김경민(41) 이슬기(41ㆍ이상 축구) 심판입니다. 유도, 배구, 축구에는 한국인 남성 심판은 파견되지 않았어요. 현숙희 심판이 파견된 유도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심판진을 꾸리지만, 이번 대회에선 16명 중 5명 만이 여성이라고 해요. 강주희 심판은 2014년 국제배구연맹 국제심판에 선정된 최초의 한국인 여성이에요. 또 2016년 리우올림픽 때 한국은 축구 심판을 배출하지 못했는데요. 이번 대회에서는 김경민, 이슬기 심판이 부심으로 참가하게 되어 더 자랑스럽네요!
③ 길을 만드는 올림픽의 여성들 Ⅱ
여성들이 만드는 '최초'라는 기록, 한국 밖에서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요. 올림픽 참가 이래 최초로 금메달을 딴 필리핀과 버뮤다, 그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하이딜린 디아스 선수는 역도 여자 55㎏급에서 우승하며 필리핀에 첫 금메달을 안겼어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은행원을 꿈꿨던 그가 역도선수로 성장한 이야기는 현지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대요. 인구 6만여 명의 섬나라 버뮤다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한 선수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의 플로라 더피입니다. 2008년부터 올림픽에 참가한 더피 선수는 빈혈과 손가락 수술 등 부상을 딛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어요.
④ 여전한 성차별에 맞서는 여성 선수들 Ⅰ
여성 선수들은 단지 승리를 위해서만 분투하고 있지 않았어요. 성차별에 맞서기 위한 노력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태권도 동메달을 따내며 이란의 첫 여성 메달리스트로 기록된 키미아 알리자데. 그는 보수적인 이란의 분위기를 "금속 메달은 중요하다면서도, 여자의 미덕은 다리를 뻗지 않는 것이라고 모욕했다"고 비판하며 독일로 떠나 난민 지위를 얻었습니다. 난민팀 대표로 경기에 나선 알리자데는 더 이상 히잡을 쓰지 않았어요. 준결승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자유를 향해가는 알리자데의 발차기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요!
⑤ 여전한 성차별에 맞서는 여성 선수들 Ⅱ
일부 국가뿐 아니라 스포츠 문화 내에서도 선수들은 성차별을 마주합니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의 선수복은 그래서 특별했어요. 독일 선수들은 상ㆍ하의가 붙어있는 형태의 '유니타드'를 입었습니다. 남성 체조선수들이 헐렁한 바지를 착용하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수영복처럼 생긴 레오타드를 입는 관행이 이어져 왔는데요. 노출이 심한 의상이 여성 선수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일조한다고 본 독일 선수들은 과감히 관행을 깨고 편한 옷을 선택했어요.
올림픽은 아니지만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불가리아에서 열린 경기에서 노르웨이 대표팀 선수들이 규정된 복장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 핸드볼연맹으로부터 벌금 1,500유로(약 200만 원)를 부과받았어요. 연맹이 규정한 복장은 딱 붙는 스포츠 브라와 길이 10㎝를 넘지 않는 비키니 하의예요. 노르웨이 선수들이 이를 거부한 이유, 말 안 해도 아시겠죠?
⑥ 성평등으로 더 나아가야 할 올림픽
100년 전과 비교하면 도쿄올림픽에서 보이는 수치 상 성별 균형은 장족의 발전이에요.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를 하며 겪는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올림픽 중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들의 경기력과는 무관한 외모를 부각하거나, 남성을 스포츠의 중심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했어요.
KBS 중계진은 25일 신유빈 선수와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며 상대 선수를 "탁구장 가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오시는 숨은 동네 고수 같다"고 표현했어요. 능숙한 경기 운영을 두고는 "여우 같다"고 했죠. 58세인 니시아리안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고,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우'라든지 '동네 고수'라는 표현을 쓰는 건 시대착오적이죠. 그런가 하면 양궁 대표팀에는 성별에 따라 다른 별칭이 붙습니다. 남성 선수들은 '태극 전사'인데, 여성 선수들은 '태극 낭자'라고 합니다. 과거, '처녀'를 올려 부르던 말이던 '낭자'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것은, 궁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방증이겠죠. '미녀 검객' 'OO 요정'처럼 여성 선수의 외모를 평가하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머리를 자르나요?"
"그게 편하니까요."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가 자신의 SNS 댓글에 단 답변이에요. 이 질문은 단순히 두발에 관한 게 아니었어요. 쇼트커트 헤어를 한 여성 선수를 페미니스트라며 조롱하고 '국가대표니까 봐준다'라며 사상검증에 나서는 이들의 행태가 집약돼 있는 장면입니다.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혹시 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페미니즘에 되려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에요. 올림픽 기간 중에도 한국 사회의 백래시는 여전합니다.
이럴수록 허스토리는 더욱 목소리를 높일 거예요. 올림픽에 나선 선수ㆍ스태프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한국 사회의 백래시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독일 체조선수 엘리자베스 세이츠가 유니타드 경기복을 선보이며 했던 말로 갈무리할게요! "우리는 여성 모두가 스스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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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집, 여자의 역할은 요리와 살림, 여자가 일하는 건 남편이 결정할 일'이라는 세계를 화살로 뚫어내며 18세에 양궁 세계 챔피언이 된 디피카 쿠마리의 이야기.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는 인도 최고의 궁사 디피카 쿠마리의 이야기를 담은 40분짜리 다큐멘터리예요. 안산 선수와 양궁 혼성단체전 8강, 여자 개인전 8강에서 두 번이나 경기를 치렀던 선수가 바로 쿠마리였는데요.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만큼 그 뒤에 자리한 한 여성의 이야기도 여러분과 나눠보고 싶었어요.
쿠마리의 고향 마을은 여자 아이들에게 전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에요.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던 쿠마리는 학비가 무료인 양궁 기숙학교로 떠납니다. 양궁 시작 후 4년 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오를 만큼 쿠마리의 실력은 대단한데요. 이상하게도 올림픽에만 나가면 실력 발휘를 잘하지 못해요. 쿠마리의 코치는 인도 여성들의 자신감 저하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성차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큐멘터리 속 쿠마리는 이렇게 물어요. "레이디스 퍼스트라고 말하면서 왜 여자들이 교육이나 스포츠에서 성공하고 싶을 땐 그렇게 말하지 않죠?" 그리고 스스로 답합니다. "우리한테 자유가 주어지면 남자들보다 더 성공하고 앞서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거예요." (→올림픽 유튜브 채널이 제작한 쿠마리 영상)
쿠마리는 굴하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는 2012, 2016 올림픽 탈락 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쿠마리의 모습에서 끝이 납니다. 현재 쿠마리는 세계랭킹 1위이지만 도쿄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어요.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길 거예요. 여성을 둘러싼 차별의 벽을 뚫기 위해서라도요. 경기는 물론, 이처럼 다양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이번 주 레터를 마감합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7월 29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에서 변동된 일부 사항은 수정해 반영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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