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무렵 위층 올라가 초인종 누르고 노크
피고인 “성폭행 목적” 진술했다가 말 바꿔
1심 “안전 침해” 징역 1년→ 2심 무죄 선고
지난해 8월 31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20대 여성 A씨는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을 켜 밖을 살폈다. 화면 속 낯선 남성이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듣기 어려웠다. A씨는 당황했고, 이내 "돌아가라"라고 했다.
잠시 후 '쿵쿵'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현관에 설치된 중문을 거쳐, 방 안에 있던 A씨 귀에도 또렷이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두려운 마음에 조심스레 인터폰을 켜자, 흉기를 들고 있는 아까 그 남성이 보였다. 5분 뒤 출동한 경찰은 그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조사 결과, 남성은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B(23)씨였다.
B씨는 경찰서에선 “성폭행을 하려고 흉기를 준비해 찾아간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검찰 조사에선 “강간 목적보다도 경찰을 불러 교도소나 병원에 가고 싶었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특수주거침입죄를 적용해 B씨를 구속기소했다.
1심은 "만약 A씨가 현관문을 열어줬다면 B씨가 집에 침입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주거침입 '미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실제 집에 침입하지는 않았지만, 주거침입 범죄를 저지르려 한 사실(착수)은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A씨의 사생활 평온과 안전을 해한 것일 뿐 아니라, A씨는 상당한 공포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는 26일 “B씨가 주거침입 행위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는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노크한 행위 외에 A씨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손잡이를 돌리는 등 문을 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초인종 누르기와 노크로는 실제 주거침입 범죄가 벌어질 만한 ‘현실적 위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B씨가 집 앞에 그대로 있다 순순히 경찰에 체포됐던 점 등에 비춰볼 때 “주거침입 고의가 있었다고 해도 범죄 의사나 범행계획이 다소 구체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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