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1도 오른 이탈리아, 농작물 종류 변화
캐나다·영국 등 와인용 포도 생산지로 각광
"빈국 식량 안보에 더 악영향" 우려도 커져
기후변화가 불러 온 이상 기온이 이제는 지구촌의 ‘농작물 지도’마저 바꾸고 있다. 뜨거워진 날씨가 식생(植生)에 영향을 미치면서 수백, 수천 년간 이어온 과일이나 곡물 등의 재배 환경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진 탓이다. 과거엔 보기 힘들었던 ‘이탈리아산(産) 바나나’ ‘고급 캐나다 와인’이 조만간 식탁 위에 오른다는 의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세계적인 기후변화가 농부들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바꾸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최근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서는 젊은 농부들이 열대과일인 아보카도와 패션프루트, 리치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세기 동안 고급 와인 재료가 되는 포도의 산지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섬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오르면서 더 이상 질 좋은 작물을 생산하기 어렵게 됐다. 대대로 이 지역에서 포도 농사를 지어 온 안드레아 파사니시(37)는 “할아버지가 와인용 포도를 재배했지만 이제 포도를 키우려면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알프스 산맥이 인접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州)에선 주로 남부 지방에서 자라던 올리브 나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오렌지와 레몬, 올리브의 주요 생산지였던 남부에서는 이제 망고, 아보카도, 바나나가 자란다. 역시 지구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1도 안팎가량 상승한 탓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와인 명가’로 꼽혔던 남유럽 포도 생산지도 기후의 역습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와인용 포도는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온도에 민감해 기후 변화의 징조로 여겨진다. 풍부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 덕분에 1,000년 이상 질 좋은 와인용 포도를 생산해 온 지역이지만, 수년간 고온다습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포도 품질도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자리는 북미, 영국, 독일 등 종전엔 포도 재배와 다소 거리가 있던 나라들이 대체하는 추세다. 현지 농부들은 곡식을 경작하던 밭을 포도밭으로 바꾸고, 그간 남유럽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대형 와인업자들은 북쪽에 있는 새 포도밭과 양조장을 사들이고 있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세계적인 샴페인 제조업체 ‘브랑켄 포머리’는 영국 런던 근교 햄프셔에, ‘떼땅져’는 남동부 켄트에 각각 위치한 포도밭을 대거 사들였다. 영국 와인산업기구에 따르면 영국 내 와인 경작지는 2000년 이후 4배나 늘었다. 모두 최근 30년간 잉글랜드 남동부 평균 기온이 1도 높아진 영향이다.
캐나다에서도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오카나간 밸리의 와이너리 수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1990년대 24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개가 넘는다. 런던의 와인 큐레이터 마크 손턴은 FT에 “기온 상승으로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르 와인의 품질이 ‘엄청나게’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온난화는 ‘척박한 땅’ 러시아마저 세계 최대 밀 생산·수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매년 6,000만 톤 이상의 밀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북부 영구 동토층이 녹고 시베리아마저 폭염과 산불에 휩싸이는 등 이 나라를 덮친 이상 기후가 역설적으로 작황 호조로 이어졌다. 러시아 농산물시장민간연구소 소브에콘의 안드레이 시조프 사무국장은 “겨울이 온화해지면서 농부들은 가을에 씨를 뿌리고 이듬해 여름에 더 많은 밀을 수확할 수 있게 됐다”며 “기온 상승은 러시아 생산량 증가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누리는 국가만큼이나 피해를 보는 나라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특히 빈국의 식량 안보에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울로 아그놀루치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에너지·자원연구소 연구원은 “기온이 섭씨 1도 오르면 독일의 밀 생산량은 3% 증가하는 반면 이집트는 7% 감소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농업 분야 효율성이 떨어지는 나라는 점점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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