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닮았던 승관이… 눈 녹으면 만날 거란 22년 소원 이뤄졌네요”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산을 닮았던 승관이… 눈 녹으면 만날 거란 22년 소원 이뤄졌네요”

입력
2021.07.29 14:00
수정
2021.07.29 20:45
0 0

[고 허승관씨 연세산악회 동료 전종주씨] 
1999년 함께 히말라야 등정 중 동료 잃어
김홍빈 실종 브로드피크서 시신 발견 
“하산 권유받고 미소, 마지막 모습 될 줄은”
산악회 후배, 시신 수습 위해 현지로

연세산악회가 제작한 허승관씨 추모 동판. 연세산악회 제공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혹시나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그렇게 마냥 기다려왔습니다."

1999년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등정 중 실종된 허승관(당시 27세)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고인과 같은 연세산악회 소속으로 당시 원정길을 함께했던 전종주(52)씨는 29일 본보와 통화에서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22년 전 허씨가 사라졌던 날도 7월 29일이었다.

전씨의 바람이 통했는지, 허씨의 시신은 이달 중순 눈이 잠깐 녹은 사이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4,950m) 근처에서 외국인 등반대에 의해 발견됐다. 연세대 사학과 92학번인 고인은 연세산악회 등정대에 참가해 고 박영석 대장 등반대와 합동으로 브로드피크 등정에 나섰다가 해발 7,300m 지점에서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 실종됐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됐지만 함께 발견된 연세산악회 재킷과 깃발이 신원 확인의 단서가 됐다. 공교롭게 며칠 뒤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실종됐다.

험준한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시신이 20년도 넘게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09년 9월 직지원정대 일원으로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을 오르다 연락이 끊긴 민준영·박종성 대원의 시신이 사고 10년 만인 2019년 7월 발견된 전례가 있지만, 실종자 대부분은 흔적 없이 히말라야에 잠들었다.

1999년 연세산악회 브로드피크 원정대. 윗줄 맨 오른쪽이 고 허승관씨다. 전종주씨 제공

전씨는 고인과 함께 '연세산악회 99브로드피크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두 사람은 4인의 선발대에 포함돼 1999년 6월 12일 원정길에 나섰다. 전씨는 “당시 파키스탄과 인도의 분쟁으로 등반 허가 등 모든 행정절차가 지연돼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상황이었지만, 승관이는 감정 기복 없이 수더분하게 일을 처리했다”며 고인을 ‘산을 닮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대원 모두가 고산 도전은 처음이었다. 전씨는 “국내 훈련에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보여줬던 승관이가 브로드피크에선 한발 한발 무겁게 옮기다가 급기야 설사면에 주저앉았다”면서 “승관이는 어쩔 수 없이 하산을 권유받았는데, 일행이 미숫가루 수통을 건네자 특유의 미소로 답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누구도 그게 허씨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1999년 7월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등정에 나선 허승관씨(왼쪽). 실종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전종주씨 제공

전씨와 산악회 동료들은 허씨와 국내 등반을 하던 일도 추억했다. 당시 연세산악회는 주말마다 30㎏ 넘는 짐을 지고 북한산 인수봉 암벽을 올랐다. 방학 때는 50일 넘게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했다. 한 동료는 “회원 중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걱정할까봐 산행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산 출신인 허씨도 마찬가지였다. “승관이 부모님이 아들이 산악회 회원인 걸 아셨을 때는 이미 말려도 말려지지 않는 단계였다“는 게 동료들의 전언이다.

1992년 백두대간 종주 당시 모습. 맨 오른쪽이 허승관씨. 연세산악회 제공


1992년 백두대간 종주 당시 모습. 맨 왼쪽이 허승관씨. 연세산악회 제공

허씨의 시신 수습은 당시 함께 원정했던 산악회 후배가 맡아 지난 26일 파키스탄으로 출국했다. 유족은 국내 운구가 어려운 현지 사정을 감안해 산악회 측에 장례 절차를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산악회 관계자는 “‘왜 위험한 곳에 가서 세금을 축내느냐’는 등의 악성 댓글도 있던데 비용은 모두 산악회가 부담한다”며 “유족의 마음을 한번만 헤아려 달라”고 당부했다.

박은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