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의 짧은 '숏컷(쇼트커트)' 머리 모양이 난데없이 젠더갈등으로 번졌다. 사회 구성원 간 반목과 갈등 수준이 어느새 생계 불안·소득 양극화 등 경제적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성악설에 솔깃하게 될 정도로 혐오의 언어를 여과 없이 토해 내는 이들이 많다.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분열상과 관련해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진화론적으로 접근한다. 이들은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통해 경쟁이 아닌 우정과 협력이 진화의 원리라고 말한다. 인류는 친화력을 무기로 살아남았고, 내집단에 대한 다정함 이면에 외집단을 향한 혐오와 비인간화 경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이 150년간 잘못 해석돼 왔다는 도발적 주장으로 시작한다. 다윈의 계승자인 저자들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돼 왔지만 다윈과 다윈을 이은 많은 생물학자들은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 '친화력 극대화'를 꼽았다고 전한다. 책의 원제(Survival of the Friendliest)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변형했다.
저자들은 신체적 조건이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열쇠가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즉 친화력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친화력이 종의 생존 전략임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와 더불어 역시 친화력이 좋은 종인 개와 보노보 원숭이의 사례를 든다. 개와 보노보의 친화력은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됐다.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는 개체 수를 늘려 왔다. 보노보가 침팬지보다 더 성공적으로 번식한 이유도 친화력에서 찾을 수 있다. 침팬지는 공격적이고, 보노보는 협력적이다. 저자들은 여러 실험을 거쳐 "보노보만큼 친화적 동물은 찾기 어렵다"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번식에 가장 성공한 수컷 보노보는 번식에 가장 성공한 침팬지 수컷 우두머리보다 더 많은 후손을 얻는다"고 덧붙인다.
가축화된 동물의 외형에 변화가 있었듯 인류도 자기가축화의 영향을 받았다. 사람은 어릴 때 좀 더 친화적이다. 저자들은 화석 기록을 통해 우리 조상 중에서도 최근 인류의 얼굴이 더 동안임을 발견한다.
특히 저자들은 이처럼 다정해서 살아남은 인류가 왜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서로 밀어내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자기가축화를 통해 친화력을 강화한 개와 보노보는 자신의 가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공격성을 발휘한다. 개는 자기가 사는 사람의 집에 낯선 자가 다가오면 공격적으로 짖는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을 위협하는 듯 보이는 상대를 쉽게 비인간화한다. 인간 고유의 특성인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이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다.
책은 미국의 사회적 갈등이 임계치를 넘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에 쓰였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지배 성향'이나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대안우파'가 득세한 시기다. 저자들은 서문에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라고 적었다.
다행히도 저자들은 사회 분열에 대한 나름의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종의 번영을 성취한 바탕인 인류의 협력적 의사소통이 바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날 열쇠도 된다는 설명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접촉과 교류를 늘리는 것. 인류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종이 살아남은 숨은 비결인 '다정함'이 배척과 혐오를 줄일 해법도 될 수 있다는 바람 섞인 전망이다.
책의 이 같은 낙관적 논지에 완벽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난무하는 거친 혐오적 언사에 이들의 이 같은 주장에서라도 희망을 찾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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