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에서 북한 대사로 열연
배우 허준호는 영화 ‘모가디슈’ 초기 합류자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 빠르게 캐스팅됐다. 류승완 감독과는 첫 번째 협업인데도 그는 “류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출연 결심을 했다”고 했다. “영화에 미친, 멋진 사람입니다. 류 감독이 다시 하자고 하면 안 할 이유가 없죠. 저를 쓸 생각이 있는지가 관건일 뿐이죠.” 28일 오후 화상으로 만난 허준호는 ‘모가디슈’ 촬영 당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허준호는 제작비 약 225억원이 들어간 대작 ‘모가디슈’에서 주소말리아 북한 대사 림용수를 연기했다. 내전 와중에 지도력을 발휘해 남북한 외교관들의 탈출을 모색하는 인물이다. 그는 “류 감독이 처음 만나 식사를 하며 역할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을 때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류 감독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고, 출연 결정을 바로 내렸다”고 전했다.
허준호는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에 꾸려진 ‘모가디슈’ 촬영장에 들어섰을 당시를 잊지 못한다. 그는 “(스태프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던, 꿈에 그리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촬영장만 들어가도 연기가 100%, 200% 이상으로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90년대 내전 당시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 (영화 내용에 맞춰) 색을 다 칠할 정도로 준비를 잘 했어요. 한국 영화 해외 촬영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해외 촬영은 참 열악했거든요. 자본이 없고, 노하우가 없었으니까요.”
허준호가 연기한 림용수는 노회한 외교관이다. 허준호는 “단순하게 세고 강한 인물로만 생각하다 당뇨병에 시달리는 환자라는 점을 뒤늦게 알고선 연기 준비를 하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얼굴 살을 급하게 빼 외모를 만들었다”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북한대사관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듯하면서도 리더 역할을 하는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림용수가 한국 외교관들과 마주치는 첫 등장 장면에서 함부로 넘보지 못할 인물처럼 연기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허준호는 한국 대사 한신성 역의 김윤석, 한국 참사관 강대진 역의 조인성 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그는 “제가 두 배우의 팬”이라며 “둘이 먼저 모로코에 도착해 촬영 중이었는데 저는 합류하자마자 팬으로서 두 사람 연기를 보고 싶어서 바로 촬영장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는 한신성 역할을 제안받았으면 출연했겠냐는 질문에 “안 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김윤석 같은 연기는 못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촬영 기간 그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허준호는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는 어느 지점이 마음을 흔들었냐는 질문에 “워낙 많아서”라며 머뭇거렸다가 “총 든 아이들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시사회 때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고 했다.
아버지인 배우 허장강(1925~1975)은 여전히 “족쇄이면서도 큰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아버지의 활약이 없었으면 연기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버지께 지금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아버지의 성취를 넘어서겠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큰 획을 그으신 분을 어떻게 이기겠냐”며 “그래서 더 노력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나이 오십을 넘고부터는 욕심을 버리려 한다”며 “배우는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전해야지 자신이 희로애락을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는 한다”고 덧붙였다.
허준호는 6년 동안 카메라 앞을 떠난 적이 있다. 영화 ‘이끼’(2010)를 마지막으로 연기를 쉬었다가 ‘뷰티풀 마인드’(2016)로 복귀했다. 연기 공백 기간 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기독교 선교 활동을 했고, 목회자가 될 생각도 했다. 배우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심심한 동네 아저씨로 살았을 것”이라며 가볍게 웃었다. “말도 이렇게 어눌하게 하고, 대본에 춤추라고 쓰여 있어야 춤추는 사람”이라며 스크린 밖 허준호의 삶을 소개하기도 했다. “제가 누워있기 좋아하고, 집에 있으면 TV만 보는 사람이거든요.”
허준호는 57세인데도 아직 건장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운동의 힘’을 비결로 꼽았다. 그는 “연기 재개를 하기 3년 전쯤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50이 넘어서도 체력이 좋아지더라”며 “다들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피곤하시겠지만 30분씩 꼭 운동을 해 조금이라도 땀을 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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