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숙의기간 촉박... 수박 겉핥기식" 우려
국민을 대표해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검토할 탄소중립시민회의가 내달 7일 출범한다. 이들은 한 달간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시나리오와 2030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쟁점사안을 공부한 뒤 9월 시민대토론회에 나선다. 공공의제에 대한 토론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숙의민주주의' 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숙의민주주의 도입한 '탄소중립시민회의'
29일 환경부, 탄소중립위원회 등에 따르면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참여할 시민참여단 규모는 500여 명 수준이다. 이들 명단은 30일 확정될 예정이다. 시민참여단은 만 15세 이상 국민에게 참여의사를 확인하고 지역, 연령, 성별 등을 기준으로 비례할당한 뒤 무작위 추출하는 방식으로 선정됐다. 연령을 '만 15세'까지 낮춘 건 미래세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함이다.
시민참여단은 다음 달 9일부터 한 달여간 사전학습자료와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탄소중립 이슈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운다. 정부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실시간 탄소중립 강의를 제공하면 시민참여단이 자율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교육이 일정 정도 진행되면 그간 궁금했던 것을 관련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시민탄소교실도 연다. 이런 절차를 밟은 뒤 9월 11, 12일 이틀간 시민대토론회를 열어 쟁점별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토론을 마치고 시민참여단 또는 시민참여단+α(일반 국민)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도 실시한다. 토론회 일정 등은 위원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일부 변경될 수 있다. 시민대토론회와 온라인 설문조사를 마치면 탄소중립위원회는 각계 의견을 반영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해야 하며,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핵폐기물 처리 때 빛 발휘
환경 관련 정책 결정에서 숙의민주주의는 2017년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여부 결정 때 처음 시도됐다.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탈핵단체와 원자력학계가 치열하게 대립하자 '시민적 상식'에 맡겨 보자며 471명의 시민참여단을 구성한 것이다. 이들은 3개월여간의 공론화 과정 끝에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향후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신고리 건설 중단'이라는 대선 공약 파기 책임론에서 비켜남과 동시에 신고리 원전 공사를 둘러싼 산업계 반발을 잠재울 수 있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도 숙의민주주의 모델이 적용됐다. 국민 대표로 선정된 시민참여단 596명은 10주간 집중학습을 거친 뒤 종합토론회를 통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필요성을 인정하고, 집중형 중간저장·영구처분 모델을 만들어냈다. 핵폐기물 처리 재검토위는 지난 4월 해당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고, 산자부는 이를 고려한 2차 고준위방폐물관리 기본계획을 연내 수립할 계획이다.
탄소중립 이슈에선 어떤 효과 낼지 미지수
하지만 탄소중립 이슈에 대해 숙의민주주의 모델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찬반이 극렬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논의, 공개적 토론을 통한 합의가 가능하지만 탄소중립은 그런 문제가 아니어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탄소중립은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갈등도 제각각이라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정보를 제공한 뒤 토론해야 의미가 있다"며 "무작위로 뽑힌 일반 국민들에게 정부가 정한 쟁점을 주고 도출한 결론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중요 현안이 생겼을 때 2년간 각계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뒤 추가적인 의견청취를 또 한다"며 "탄소중립처럼 장기적이고 중요한 이슈를 한 달간의 숙의로 마친다는 건 수박 겉핥기식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탄중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부적 절차를 충분히 밟으면 좋겠지만 위원회 출범이 늦어진 데다 10월 말 로드맵 공개를 공표한 터라 다소 촉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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