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대로 조명된 적조차 없었던 '젠더 감수성'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상당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인지하고 있는 주요 이슈가 됐고, 한 때 특수가정의 형태로 꼽혔던 1인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의 비율은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사회의 주요 타깃층 역시 X세대에서 MZ세대로 배턴 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 '공감'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예능 시장 역시 기민하게 변화의 길을 택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뀐 예능의 판도는 어느덧 '예능 트렌드'의 중심을 넘보고 있다.
첫 방송 이후 뜨거운 화제 몰이 중인 JTBC '용감한 솔로 육아- 내가 키운다'는 다양한 이유로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된 이들이 모임을 결성해 각종 육아 팁과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일상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예능이다.
그간 스타 가족들이 출연하는 관찰 예능은 다수였지만, 한 부모 가정의 '홀로 육아기'를 내세운 기획은 처음인 만큼 해당 예능은 방송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조윤희 김현숙 채림은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싱글맘의 현실적인 육아기를 공개하며 시청자들의 공감과 응원을 자아내는 중이다.
첫 방송 이후 호평을 받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성공한 '내가 키운다'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이혼율과 이로 인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된 싱글맘·싱글대디의 홀로 육아기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며 보다 다양화된 현대 사회 가족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처럼 과거 결혼과 자녀의 양육이 수반되는 가족의 형태가 소위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현재 우리 사회에는 한 부모 가정, 1인 가구, 딩크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함께 존재한다.
그 중에는 최근 예능 등장으로 큰 화제를 낳았던 '자발적 미혼모(부)'도 포함된다. 국내에 자발적 미혼모에 대한 이슈를 뜨겁게 불러 일으켰던 사유리는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서양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 받아 아들 젠을 출산한 뒤 지난 3월 KBS2 대표 육아 예능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합류했다.
사유리와 젠 모자의 출연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한 부모 가구 최초 출연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출연 결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KBS 시청자권익센터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결혼으로 이룬 건강한 가정의 모습을 변질시키고 결핍을 가진 비혼모 가정을 미화할 수 있다'라는 반대 청원글이 게재됐던 일은 이같은 새로운 가정의 형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당시 KBS는 '비혼모 가정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족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며 사유리 젠 모자의 합류 결정을 유지했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실제 방송을 통해 씩씩한 홀로 육아기를 공개한 사유리는 초보 엄마의 성장과 애틋한 모성애, 아들 젠과의 케미 등을 솔직하게 그려내며 가족의 형태를 넘어 '한 가족'으로서의 단단한 존재감으로 공감을 얻는 중이다.
그런가하면 '슈돌'은 국내에 증가하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심리적 장벽 역시 상당 부분 허무는데 일조했다. 현재 '슈돌'에 출연 중인 아동 중 절반 이상은 혼혈로,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과 벤틀리부터 축구선수 박주호의 세 자녀 나은 건우 진우, 최근 합류를 알린 사유리의 아들 젠 등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서양 혼혈인 해당 아이들은 인형같은 이국적인 외모와 유창한 한국어 실력,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으로 '슈돌'의 인기를 견인하는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출연 중인 자녀들이 모두 백인 혼혈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편협한 다문화 코드의 활용에서 오는 다양성 부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이 역시 방송에서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이같은 캐스팅이 대중으로 하여금 '다문화 가정'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보다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 역시 부정하긴 어렵다.
변화하는 사회상이 예능의 판도를 바꾼 것은 비단 가족 예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세대의 달라진 연애관 역시 비슷했던 연애 예능의 색깔을 바꿔놓는 중이다.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티빙(TVING) 오리지널 웹예능 '환승연애'는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카카오TV가 화제 속 론칭한 웹예능 '체인지 데이즈'는 각자의 이유로 이별을 고민 중인 세 커플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을 되찾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뒤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데이트를 즐기고, 최종 선택을 통해 이별 혹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선택하는 파격적인 과정을 그린다.
두 예능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요즘 젊은 세대들의 연애관을 고스란히 담아낸 파격적인 구성으로 방송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과거 대부분의 연애 예능들이 솔로 남녀들이 출연해 각자의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조명했던 것과 달리, '환승연애' '헤어진 연인의 만남'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졌던 연애의 단면들을 콘텐츠의 중심에 등장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꽤나 긍정적이다. 당초 티저와 프로그램의 기획이 공개됐을 당시 지금껏 다룬적 없는 파격적인 소재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이어졌지만 두 예능이 출발을 알린 뒤 '예상보다 재미있다'라는 반응이 줄이으며 젊은 시청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연애의 다양한 측면을 예능 콘텐츠로 풀어낸 시도에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과거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한 이후 천편일률적인 포맷 속 쇠락길을 걷던 연애 예능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전망인 것만은 사실이다.
가파른 사회의 변화 속,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던 예능의 판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가족상의 등장부터 MZ세대의 감성을 반영한 연애 예능까지 그 장르도 범위도 다양하다. 이제 변화는 시작됐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예능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