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육곰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예정입니다

입력
2021.07.27 20:00
수정
2021.07.28 10:09
25면
0 0
박정윤
박정윤올리브동물병원장
철창 밖을 나온 적이 없는 사육곰. 곰보금자리 제공

철창 밖을 나온 적이 없는 사육곰. 곰보금자리 제공


저는 반려동물을 돌보는 수의사이지만 '곰보금자리'라는 단체에서도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로 사육곰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육곰이 어떤 이유로 키워지는 곰인지는 아시나요? 웅담용으로 사육, 도축되는 곰을 사육곰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 초 정부는 농가 수익 증대를 위해 웅담산업을 장려했고, 해외에서 곰들을 수입해 와 사육하도록 권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웅담의 수출은 금지되었고, 현대의학의 발달로 웅담이 큰 효용이 없다는 게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 수요도 줄어들었죠. 더 이상 웅담을 먹는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고작해야 관료들에게 진상하는 용도로나 쓰이려나요.

2016년 정부는 사육곰들의 증식을 금지했고, 중성화 수술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곰들의 고통을 줄일 수는 없었죠. 수십 년간 철장 밖을 나온 적이 없는 곰들은 죽지도 못하고 아직 철장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 시국에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아 곰을 불법 도살해서 웅담을 채취해 먹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취총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곰의 혀를 잘라 숨이 멎을 때까지 방혈하는 방식으로 죽였습니다. 인간으로서 극악하고 잔인한 도살이라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섭취한 웅담이나 살코기가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되려나요. 더욱 화가 나는 건 불법으로 도축되거나 매매되어도 적절한 처벌조차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국가에서 곰들을 몰수해도 데려다 둘 곳이 없으니까요.

이달 초 용인에 있는 사육농장을 탈출한 곰이 사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쩌다 곰이 탈출하는 사건이 있으면 잠시 관심을 둘 뿐,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398마리의 사육곰들은 감금당한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탈출한 곰이 산속에서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지리산에 방사하면 어떠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육곰은 온전한 야생동물이 아닙니다. 모두 농장에서 태어난 곰들이고 사람의 필요에 의해 데려다 키웠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존합니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야생에 바로 적응할 방법을 모릅니다. 결국 사육곰들의 운명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요.


못 쓰는 소방호스로 만든 해먹에서 즐거워 하는 사육곰. 곰보금자리 제공

못 쓰는 소방호스로 만든 해먹에서 즐거워 하는 사육곰. 곰보금자리 제공


이런 현실에서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사육곰을 구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생추어리(안식처)를 만들고자 결성된 프로젝트 단체입니다. 대형 단체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해왔습니다. 농장실태 조사로 사육곰의 현실을 파악하고 알렸고, 못 쓰는 소방호스로 해먹을 만들어 곰농장에 방문해서 달아주는 등,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왔습니다. 학생, 행동트레이너, 환경단체 활동가, 수의사, 수의테크니션, 프리랜서, 작가, 디자이너, 변호사 등등 각자의 본업이 있지만 모두 봉사자 겸 활동가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뜻을 함께합니다. 민주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또 동물문제를 공유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갑니다.

얼마 전부터 '곰보금자리' 활동가들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곰 사육을 포기한 농장의 15마리의 사육곰을 구조했습니다. 순수 목적의 곰 생추어리를 건립하기 위해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지원을 받고 또 많은 이들의 힘을 모아 국내 최초의 곰 생추어리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생명을 연장하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고유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생추어리의 목적입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요.


강원도 화천에서 활동 중인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곰보금자리 제공

강원도 화천에서 활동 중인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곰보금자리 제공


건립 전까지 매주 강원도 화천에 가서 구조한 15마리의 곰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밥을 주고 청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풍부화 환경개선에 힘씁니다. 진료도 보고 개체별 특성과 문제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곰들의 특성과 개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15마리 중 1마리는 그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14마리의 곰이 모두 무사히 생추어리가 건립되는 날까지 잘 지내주길 바라지만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물통도 만들어주고 매주 관리도 해주지만 열악한 환경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생추어리가 생기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아직 몰라서 그렇지, 웅담 때문에 갇혀 사는 사육곰이 아직도 있는지 알게 되면 많은 분들이 곰을 위해 힘을 보탤 거라 믿습니다. 저도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곰보금자리'에서 크기와 상관없이 관심과 행동이 함께한다면 모두 활동가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목소리를 낸다면 분명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을 철장 속에서 살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남은 삶을 갇힌 채 살아갈 사육곰들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작은 행동이라도 함께해주세요.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