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냉전자유주의 넘어서는 자유민주주의

입력
2021.07.28 00:00
26면
0 0

자유에 제한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위험
보수 진보 모두 외면한 한국자유주의
차기대선 이 빈 공간을 누가 선점할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2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윤석열 캠프 제공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2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윤석열 캠프 제공


대한민국 헌법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 그 사상적 바탕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적지 않은 이념 논쟁을 가져왔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제2공화국 헌법의 정당해산 요건을 정하는 조항에 처음 도입되었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제4공화국 헌법(유신헌법) 전문에 들어온 이래 두 개념은 지금까지 헌법 텍스트에 병존하고 있다.

1980년 법대 2학년이 되어 처음 수강한 헌법 강좌에서 김철수 교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으로 설명했다. 서울의 봄의 흥분된 분위기에서 접한 이 해석론이 매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복지국가의 원리를 민주적 기본질서의 한 요소로 삼는 이 견해는 반공을 국시로 삼은 공안통치의 동기를 가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을 헌법 전문에 도입한 유신헌법의 의도를 비웃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철수 교수의 해석론이 헌법학계에서 다수설의 지위를 누렸다 할 수 없고 헌법규범과 정치사상을 같은 기준으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 개념을 둘러싼 공론장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그렇게 구별하는 담론은 꽤 널리 통용되었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재산권 보장을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로 여길 뿐 권위주의체제에 의한 자유의 유린을 방관해온 것으로 보았다. 박근혜 정부 말기 자유민주주의를 함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에서 권위주의의 유령을 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려 했을 때에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일어난 사건들 앞에 그러한 생각이 흔들림을 느낀다.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사법기관을 장악하려는 시도, 스스로 역사의 판관을 자임하는 오만을 보면서 자유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나왔다. 자유민주주의 아래 진보와 보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좀더 분명해졌다. 최장집 교수는 소셜미디어에 의해 동원된 다수의 전제정으로 귀결되는 직접민주적 포퓰리즘과 도덕화한 반(反)다원주의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보수에 의해 수용되지 못하고, 진보에 의해 버림받은 미아(迷兒)”가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냉전자유주의’를 접두사 없는 자유주의로 발전시켜야 할 당위성을 역설했다. 두 사람은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으나 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최장집은 자유민주주의를 최소주의적(minimalist)인 절차적 제도로 본다. 경제적 내용은 자유민주적 제도 속에서 진보와 보수가 각각 사회민주주의와 시장자유주의로 채워나가는 것일 뿐이다. 최장집은 자유주의의 빈 공간을 보수가 점함으로써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윤석열은 최장집의 조언을 이행할 수 있을까? 보수는 자유주의의 빈 공간을 선점할 수 있을까? 난민과 중국동포, 성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보수세력 일각에서 보여온 혐오의 태도를 볼 때, 진보진영의 역사왜곡처벌법안과 동일한 사고구조에 입각한 천안함왜곡처벌법안을 볼 때, 그러한 과제 달성에는 고도의 균형감각과 지도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늘 묘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민심이 다가오는 대선에서 자유의 적과 동지가 누구인지를 판별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