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역의 노병(老兵)들이 평양에 집결했다. 감염병 우려에 국경 문까지 걸어 잠근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전국노병대회’를 강행한 것이다. 6ㆍ25 정전협정 체결(전승절)을 기념하는 취지지만, 미국을 겨냥한 대외 긴장감 조성의 목적이 더 커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68돌을 맞아 제7차 노병대회가 수도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된다”며 참가자들의 도착 소식을 전했다. 노동당 간부들이 이들을 찾아가 “피로써 조국을 지킨 은인”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노병들을 극진히 예우하는 모습도 한껏 연출했다.
노병대회는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군권’을 장악한 1993년 처음 열렸다. 통상 전승절(7월 27일)을 앞두고 개최되는데, 이후 뜸하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2년 행사를 재개한 뒤 지난해까지 총 6차례 열렸다. 참전 용사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대대적으로 부각하는 날인 만큼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도 노병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등 깍듯이 예우한다.
이처럼 상징성은 크지만 올해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데다 ‘정주년(5의 배수로 꺾어지는 해)’도 아니어서 굳이 강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답은 개최 시점에 있다. 26일 중국을 찾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왕이 외교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했다. 북한이 전승절 사전행사 격인 노병대회를 통해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논의할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지난해 노병대회에서 “(북한을) 넘본다면 그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할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단단히 엄포를 놨다.
북한 외무성과 대외 선전매체들도 전날부터 대미 비난 성명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이 땅 위에 또다시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자들은 그가 누구든, 우리의 무자비한 징벌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미국을 에둘러 지목했다. 또 우리민족끼리는 6ㆍ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발생한 ‘노근리 학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지금도 조선 인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8월 한미연합군사연습에 맞춰 담화나 연설 등을 통해 계속 자신들의 군사력을 드러내면서 대미 협상에서 융통성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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