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되면 전자 결제 시장 잠식 불 보듯
中 당국 서슬에 ‘울며 겨자 먹기식' 협조
중국 1위 전자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마윈의 앤트그룹이 “법정 디지털 화폐 개발을 도와 달라”는 자국 정부 요청에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른바 ‘디지털 위안화(e-CNY)’가 보급될 경우 자사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 잠식될 게 뻔하지만, 자충수인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협조해야 할 만큼 당국의 서슬이 시퍼렇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비공개 디지털 위안화 사용 시험은 지난해 말 앤트그룹 고위 임직원 대상으로 시작됐다. 올 2월엔 앤트뿐 아니라 자매사 알리바바에서 근무하는 모든 중국인 직원이 참여하도록 범위가 확대됐다.
직원들은 항저우 등 중국 도시에 있는 회사 구내식당 수십 곳과 자판기, 소매점에서 자사 알리페이 애플리케이션(앱)에 내장된 전자 지갑을 사용해 디지털 위안화로 상품값을 지불했다. 또 알리바바가 지원하는 업체와 소매상의 온라인 서비스 또는 상품의 가격을 치르는 데 국유 은행이나 앤트 산하 민간 인터넷 전문 은행 ‘마이뱅크(MYbank)’ 계좌에서 인출한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었다.
앤트 측이 떨떠름해한 건 분명하다. 14억 중국 인구 중 사용자가 10억 명이 넘는 알리페이를 해체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작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직원 사이에서 나왔다. 미 필라델피아 외교정책연구소 분석가 로버트 머레이는 “결제는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라며 디지털 위안화의 성공은 알리페이 등 기존 사업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요구는 사실상 반(半)강제다. 현재 중국의 전자 결제 시장을 양분 중인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챗페이’가 벌이는 각축 탓에 소비자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각 진영에 속한 업체들이 상대방 쪽 결제 서비스 적용을 거부하기 일쑤여서다. 하지만 ‘법정 통화’ 디지털 위안화에 대해선 그럴 수 없다. 소비자를 위해 벽을 허문다는 게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이다.
그래서인지 시험을 돕는다고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올 초 디지털 위안화 전자 지갑 시험에 우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국유 은행 6곳에 기득권을 부여했고, 마이뱅크나 텐센트의 ‘위뱅크(WeBank)’ 같은 후발 민간 가상 은행은 본격 테스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직원 수만 명을 시험에 참가시킨 알리페이가 디지털 위안화 지갑 운영자로 인정될지에 대해서도 인민은행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협력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일단 금융 분야에서 앤트 등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더욱이 아예 소외돼 버리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중국 부서장을 지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앤트가 경쟁 우위를 너무 많이 감소시키지 않는 쪽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설계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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