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세무대리' 허용 범위 두고 입법 로비 전쟁
헌재 세무사 손 들어주고…?개정안도 변호사 불리
변호사 vs 세무사 갈등 속 '납세자 권익' 논의 실종
변호사와 세무사 간의 업무영역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18년째 해묵은 '직역 수호' 분쟁이지만, 최근 세무업계 손을 들어준 헌법재판소 결정과 국회의 법안 준비 소식이 잇따라 나오면서 변호사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쟁점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로 모아지고 있다. 개정안을 심사 중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현재 양측의 치열한 물밑 로비가 진행 중이다. 업계의 밥그릇 싸움에 매몰돼 '납세자의 재산권 보호'라는 공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국회가 세무업무의 전문성을 검증할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차례 법 개정으로 입지 줄어든 변호사들
2003년 이전만 해도 변호사가 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이 생기고, 세무대리 업무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례 세무사법 개정으로 변호사들 입지는 대폭 줄었다. 1차 개정으로 2004~2017년 신규 변호사들은 세무사 자격은 받으면서도 '세무사 등록'은 못하게 됐다. 사실상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는 한 세무업무를 못하게 된 것이다.
뒤이은 2차 개정으로, 2018년 1월 이후 자격을 취득한 신규 변호사들에 대해선 '세무사 자격 자동 부여' 조항마저 폐지됐다. '등록 금지'가 아니라 아예 세무사 자격 자체를 못 받게 된 것이다. 변호사 업계는 "본래 변호사 직무에 포함됐던 세무업무를 2018년 이후 신규 변호사들에게 원천 금지한 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1표 차로 세무업계 손 들어준 헌재
헌재는 최근 2차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5명(합헌) 대 4명(위헌)'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세무업계 손을 들어줬다. 지난 15일 헌법재판관 5명은 “해당 조항은 변호사에 대한 특혜 시비를 없애려고 마련됐고, 변호사가 세무·회계 등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꼭 세무사 자격을 줘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재판관 4명은 "'세무분야 전문성 제고’라는 표면적 입법 목적과 달리 세무사 시험 합격자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이 의심된다”며 변호사업계 입장을 일부 반영한 입장을 냈다. 이들은 일률적 제한 대신 △세무업무 실무교육 이수자 △회계·세법 과목 이수자 등에 대한 ‘조건부 허용’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2개 핵심 업무 뺀 법안에 변호사업계 반발
'2018년 이후 신규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부여' 문제는 일단 세무업계의 승리로 일단락됐으나, 국회에선 더 큰 전쟁이 진행 중이다. 국회가 2004~2017년 세무사 자격만 받고, 등록은 못했던 1만8,000여 명의 변호사들에게 세무업을 허용하는 방향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재가 1차 개정안에 대해 2018년 4월 "세무사 자격을 지닌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를 전면 금지한 건 위헌"이라며 '개선 입법'을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법사위가 검토 중인 개정안은 변호사에게도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되, 세무업무 8개 분야 중 2개(장부작성·성실신고확인)는 제한하는 게 골자다. 변호사업계 측은 그러나 "두 업무가 세무업무의 70~80%에 달하는데, 이를 금지하는 건 사실상 헌재 결정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세무업계는 “주력 일감마저 뺏길 순 없다”며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등록 세무사는 1만3,500명으로, 세무사보다 훨씬 많은 변호사들이 아무 제한 없이 세무업에 뛰어들 경우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변호사 vs 세무사 갈등 속 납세자는 실종
변호사업계가 주력 분야가 아닌 세무분야에까지 열을 올리는 건 ‘팍팍해진 업계 상황’과 직결돼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변호사가 3만 명대로 급증한 데다, 세무사·변리사·법무사 등 전문자격사들과의 직역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로스쿨 도입 취지는 유사직역을 통·폐합해 변호사 제도로 일원화하되,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이지만, 변호사 수만 늘어나고 유사직역 업무 침탈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변리사회·한국세무사회 등 6개 단체는 지난해 ‘전문자격사단체 협의회’를 출범해 변호사 업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양측의 갈등 속에서, 정작 납세자들을 위한 ‘전문성 검증’ 논의는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전문자격사 제도의 취지는 국민의 재산·신체 보호 등 공익적 목적에서 전문성을 검증받은 자에 한해 업무를 허용하라는 것"이라며 "사법시험, 변시에서 회계장부 작성 등 전문 지식을 검증받지 않은 변호사에게 세무업무를 곧바로 허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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