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중국 방문에 맞춰 ‘친서 외교’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 중국의 극심한 홍수 피해를 위로하려는 목적이지만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중국과의 변함없는 결속을 과시해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중국에도 미중 회담에서 ‘혈맹’의 무게를 훼손하는 메시지를 담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가 담겨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홍수 피해를 위로하는 구두 친서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큰물(홍수) 피해와 관련해 심심한 위문을 표하시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셨다”며 “수재민들을 안착시키기 위한 습근평(시진핑) 총서기 동지와 중국 공산당, 인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전했다. 11일 북중우호조약 60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보낸 지 2주 만이다.
김 위원장이 중국과 우애를 다지는 데 직접 나선 건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셔먼 부장관은 23일 한국을 찾아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마친 뒤 “중국 톈진에서 우리(미중)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북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북한 이슈가 이미 의제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급해진 건 북한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중이 그나마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분야다. 셔먼 부장관도 2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것으로 점쳐진다. 중국은 현재 ‘쌍중단(북핵ㆍ미사일 도발 중단과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확전 방지를 위해 북한 문제에 양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북한은 친서를 통해 미중 양측을 향한 경고와 바람을 동시에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셔먼 부장관 방중에 앞서 북중관계를 의도적으로 과시함으로써 “미국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중국에는 대화 테이블에 나오라고 설득해도 미국의 적대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응할 맘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상기시켜, 회담 기대감을 낮추는 ‘김빼기’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셔먼 방중을 기점으로 하반기부터 친서 등을 활용한 북중 밀착을 더욱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계산법이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