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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거꾸로 가는 교통정책

입력
2021.07.24 05:30
수정
2021.07.28 11: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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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23> 교통 가수요 관리, 도로확장보다 중요

차량이 정체돼 있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 연합뉴스

차량이 정체돼 있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 연합뉴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가 본격 추진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을 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안은 지향점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도로용량 확대를 통한 지정체 해소에 집중하고 있는 데 비해, 후자는 녹지 확보와 시가지 연결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경우든 고속도로 지하화가 당위성을 확보하려면 도로용량 확대가 전제돼야 하는데 과연 적절한 방안일까. 물론 당장에는 교통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교통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경부고속도로의 용량 확대는 서울 접근성을 개선시킬 것이고, 그로 인해 교통량이 증가하는 소위 유발수요(Induced Traffic)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의 중심성은 더 강해지고 서울로 향하는 교통수요와 주택수요는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 집값은 더욱 상승하고 교통정체도 재현될 수 있다. 이런 대증요법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검토 방안. 그래픽=송정근 기자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검토 방안. 그래픽=송정근 기자


도로교통의 딜레마, 차는 느는데 도로는 제자리

도시공간에서 교통은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살이 썩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듯이, 교통이 막히면 도시의 생명도 위험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교통 소통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예를 들어 올해 국토교통 예산 중 무려 66%가 도로와 철도에 투자된다. 총 15조6,000억 원으로 주택부문 예산 2조 원의 8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대도시에서는 교통체증이 여전하고 이로 인한 혼잡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추정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교통혼잡비용은 67조7,000억 원이다. 전년보다 13.7%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수도권 혼잡비용은 35조4,000억 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막대한 재정을 교통시설에 투자하고 있음에도 왜 혼잡비용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차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도로가 따라가지 못해서일 것이다.

자동차는 2010년 이후 연간 2~4% 정도 늘었는데 도로 연장은 연 1% 내외 증가에 그쳤다. 그 결과, 갈수록 도로 혼잡이 가중되고 있다. 더 중요한 요인은 바로 통행량인데 도로용량 확대보다 통행량이 훨씬 더 빨리 증가한다면 도로 혼잡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자동차의 총운행거리도 연 3% 내외로 증가하고 있어 결국 도로가 통행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 연장 추이 및 증가율. 국토교통부 도로현황조서

도로 연장 추이 및 증가율. 국토교통부 도로현황조서


차량등록대수 증가율 vs 도로 연장 증가율. 국토교통부 도로현황조서

차량등록대수 증가율 vs 도로 연장 증가율. 국토교통부 도로현황조서


교통에도 가수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통행량 증가는 필연적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통근은 필수적인 통행이지만, 쇼핑이나 여가통행은 유동적이다. 여건에 따라 상당량의 통행량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온라인 쇼핑과 택배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쇼핑통행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굳이 대형마트에 장보러 가지 않아도 집 앞까지 가져다 주니 그만큼 통행량이 줄어든다.

통행수단 측면에서는 더더욱 도로통행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통근 같은 필수적인 통행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자동차를 이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나 자전거와 같은 대체 교통수단이 잘 갖춰져 있다면 도로통행량을 상당량 감소시킬 수 있다.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자전거 이용이 일반화돼 있어 차도가 넓지 않아도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다.

교통에도 이른바 가수요(假需要)가 존재한다. 불요불급한데도 더 빠르고 편리해서 도로에 차를 몰고 나오는 수요 말이다. 교통 가수요는 심각한 혼잡비용을 유발하고 결국 막대한 비용이 드는 도로 확장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로 환경오염을 심화시키며 매일 많은 사람들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경제 측면에서 주택 가수요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교통 가수요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교통수요를 실수요(實需要)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차량이 많아지고 혼잡이 발생하면 당연히 신호체계를 개선하고 도로를 넓히고자 한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고가나 지하도를 짓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신설한다. 발생하는 교통량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과 고민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도로의 확장은 가장 효과적인 교통대책 중 하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존 시가지의 경우 도로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변 건물과 토지에 대한 엄청난 보상비를 감당할 수 없다. 양쪽에 아파트가 즐비한 경부고속도로도 같은 상황이라 궁여지책으로 수직적 확장을 선택했다. 그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지하화는 성공한 정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유발수요로 인해 또다시 정체가 빚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더 깊은 곳에 지하고속도로를 만들 것인가.

경부고속도로 용량확대의 더 심각한 문제는 더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와서는 서울시내 곳곳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고속도로와 연결된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는 이미 통근 시간 지·정체가 상당히 심하다. 늘어난 차량들은 결국 나들목에서의 병목현상을 악화시키고 시내 주요 도로의 정체도 극심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시내도로는 지하화도 어려우니 교통지옥에 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도로교통을 줄여야 도시가 산다

결국 도로통행 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이다. 그 예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면 경부고속도로 이용자들의 통근시간이 분산돼 혼잡이 완화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재택근무나 메타버스를 적극 확대하는 정책을 통해 통근통행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근 한 프롭테크 업체가 사무실을 없애고 약 200명에 이르는 전 직원의 가상오피스 출근을 현실화했다. 적어도 수십 대의 차량이 도로에 나올 필요가 없어졌다. 만약 메타버스가 일반화된다면 통근시간에 수천 대의 차량이 도로에서 사라질 것이다.

대중교통의 서비스 향상과 요금 인하도 고려해볼 만하다. 통상 막히는 차도를 넓히는 데 필요한 막대한 돈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면 버스, 지하철 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일부 학자들도 대중교통요금 현실화를 주장하며 버스회사가 적정 수익을 낼 수 있는 요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한 사람이 버스를 타면 도로에 나올 차 한 대가 줄어드니 길이 덜 막힌다. 그러니 혼잡비용이 감소하고 탄소 배출도 덜하다. 많은 사람이 버스와 지하철, 자전거를 탄다면 장기적으로는 추가적인 도로 확장도 필요 없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버스요금을 낮게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교통정책 자체에 있지 않다.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은 서울집중적인 도시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도로가 부족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면서 동시에 틀린 말이다. 직장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데 먼 곳에 집을 지어 놓으니 많은 사람들이 차가 막혀도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 좋은 학원, 재미있는 놀거리도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다. 이런 불균형을 고치지 않고서는 서울과 연결된 도로의 교통정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급행이든, 완행이든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지속 가능한 교통정책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체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차량이 유입되면서 연결된 서울시내 간선도로는 더욱 심한 혼잡을 겪을 수 있다. 만약 지하고속도로를 유료화한다면 우회로를 찾는 차들로 주변 도로는 교통지옥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도로교통 수요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정책이 절실하다. 당국이 진정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재고돼야 한다. 대신 빠르고 쾌적한 대중교통시스템에 더 투자하고, 좋은 일자리와 놀거리를 수도권에 고르게 조성하는 방안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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