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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달리 잠잠한 한국 천주교… "성소수자들 환대할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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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달리 잠잠한 한국 천주교… "성소수자들 환대할 길 찾아야"

입력
2021.07.21 17:30
수정
2021.07.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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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장소가 돼야 합니다. 교리나 신학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목적 관점에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논의가 교회 안에서 선행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자리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신한열 테제공동체 수사

한국에서 천주교를 믿는 성소수자들이 교회로부터 차별을 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사제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환대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프랑스의 국제 단체 ‘테제공동체’의 신한열 수사는 이달 출간된 가톨릭평론 여름호에서 “서구 교회와 달리 한국 가톨릭에서는 (성소수자 사목)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신학자나 사목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라면서 “우리 교회가, 신자들과 수도자, 사제들이 성소수자에게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 수사는 여름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변희수 하사가 가톨릭 신자였다고 소개하면서 한국 천주교에도 성소수자 신자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교회가 그들을 보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나 새로운 길을 찾기보다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데 교회가 힘을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 수사는 “일부 언론에서 교회의 입장에 대한 반박과 논의를 다루었지만 교회 안에서는 깊이 있는 토론이 전혀 없는 것이 아쉽다”면서 “적게 잡아도 인구의 3%가량 되는 성소수자들이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 없는 것이 아니며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신 수사는 한국과 달리 유럽 교회에서 성소수자 사목과 관련해 사제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들의 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더 열려 있어 사제들도 성소수자들과 만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2016년 6월 13일 스위스 취리히의 한 교회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설치하는 모습. 전날 올랜도에서는 성소수자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50명이 사망했다.

신 수사는 한국과 달리 유럽 교회에서 성소수자 사목과 관련해 사제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들의 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더 열려 있어 사제들도 성소수자들과 만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2016년 6월 13일 스위스 취리히의 한 교회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설치하는 모습. 전날 올랜도에서는 성소수자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50명이 사망했다.


"성소수자들 교회에서 상처 받아"

이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은 사회를 무서워하듯 교회도 무서워한다. 사목자나 교우들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라며 정죄하고 혐오하는 말을 할 때마다 가슴에 못이 박힌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활동하거나 생활 나눔을 할 때도 자신에 대해서 밝히지 못한다. 신 수사는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과 사목자를 연결하는 끈이 거의 없고, 많은 성소수자가 교회를 이미 떠났거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벽장 속’에 갇힌 채 아픔을 삼키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들은 정죄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을 교회에서 찾고 있지만 발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는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동정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결합시키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는 요지의 공식 교리서 내용만 강조할 뿐, 성소수자 사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교리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성애 행위는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니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성소수자로 태어났을 뿐인데 왜 사제처럼 살라는 말이냐’라는 반발이 나온다.

서구 사제들은 공개적으로 의견 제시

신 수사는 기고문에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른 유럽 교회의 모습을 소개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3월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자는 축복하더라도 그들의 결합은 축복할 수 없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사제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에 따르면 벨기에 앤트워프 교구의 요한 보니 주교는 신문 기고 글에서 “이번 응답을 고통스럽게 느끼며 납득하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다”면서 신앙교리성의 지침에는 “사목적 배려와 과학적 근거, 신학적 뉘앙스(세심함)와 윤리적 정확성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교구장 글레틀러 주교 또한 “우리 교회는 게이와 레즈비언, 그리고 자신의 성에 대해 불확실해하는 사람들 모두를 환영하고 교회 안에 영적 보금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주 저자였던 빈의 쇤보른 추기경의 인터뷰 내용도 소개됐다. 그는 노모가 항상 자신을 축복한다며 어떤 어머니가 아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축복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동성애를 느끼거나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다. 그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신앙교리성의 지침은 많은 동성애자가 교회로부터 거부당한다고 느끼도록 하면서 아주 깊은 상처를 줬다”고 설명했다.


가톨릭 평론 2021 여름호. 김민호 기자

가톨릭 평론 2021 여름호. 김민호 기자

"그냥 '안 된다'라고 말하면 부족"

호주 브리즈번의 마크 콜러디지 대주교와 블레즈 큐피치 시카고 대교구장은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환대할지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콜러디지 대주교는 “동성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치자. 그렇다면 동성 커플들을 껴안을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그냥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신 수사는 독일의 ‘사목적 불복종 운동’도 소개했다. “축복을 청하는 성소수자 커플들을 거절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독일주교회의 의장에게 보내자는 운동에 2,000명이 넘게 서명했는데 사제와 부제가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이 캠페인은 많은 호응을 얻어서 독일 전역 100여 군데 성당에 무지개 깃발이 내걸렸다고 신 수사는 전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신 수사는 기고문에서 "위에 언급한 것은 동성혼이 합법화되었거나 ‘시민결합법’이 있는 나라의 사목 현실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나 새로운 길을 찾기보다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데 교회의 힘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 사목은 시급한 과제"

신 수사는 기고문에서 성소수자 사목은 교회가 당장 착수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이성애자들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 사회에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상황에서 교회가 스스로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 수사는 “성소수자들도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이므로 교회가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 사제들뿐만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보편 사제직을 부여받은 신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수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기고문을 쓴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차별금지법에 대해 논의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라면서 “신학적이고 교리적 부분이 아니라 사목적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 수사는 “교회는 어느 누구에게도 장벽을 쌓으면 안 된다”면서 “중심은 있지만 울타리는 없는 것이 교회”라고 강조했다.


신한열 수사 테제공동체 수사로 1988년 프랑스 테제에 가서 1992년 종신서약을 했다. 테제에서 국제 청년 모임을 진행하면서 꾸준히 동아시아를 방문하다가 지난해 가을 한국으로 파견됐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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