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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호놀룰루미술관 수장고 속에서 발견한 16세기 조선회화 

입력
2021.07.24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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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천지가 진동할 만한 발견(earth-shattering find).”

“잃어버렸던 베르메르의 그림을 찾은 기분(this is like discovering a lost Vermer).”

2014년 2월 미국 호놀룰루미술관 큐레이터 숀 아이크만이 미술관 소장 그림 한 점에 대해 한 표현이다. 10여 년 전부터 수장고 속에 유물번호도 없이 놓여 있던 그림 하나가 16세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밝혀진 뒤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였다.

1592년부터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에 제작된 조선시대 그림은 현전하는 수량이 매우 적다. 그런데 수장고 한 구석에서 1586년 기록한 제시(題詩)가 또렷이 남아있는 그림이 발견되었으니, 미술관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2014년 2월 한 매체가 호놀룰루미술관 지하실에서 보물이 발견됐다는 내용을 방영하고 있다. KITV News 방송 화면 캡처

2014년 2월 한 매체가 호놀룰루미술관 지하실에서 보물이 발견됐다는 내용을 방영하고 있다. KITV News 방송 화면 캡처



10년 넘게 수장고 속에 숨어 있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이들은 한국에서 파견된 조사단이었다. 문화재청은 국외문화재활용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정우택(전 동국대 교수), 박지선(용인대 교수), 조인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같은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한국조사단은 호놀룰루미술관에 소장된 회화 작품들을 조사하고 그중에서 보존처리가 필요한 그림들을 선별하는 임무를 맡았다. 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조인수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마지막 날에는 약간 시간이 남아 추가로 몇 작품을 더 열람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크만씨가 족자 하나를 조금씩 펼쳐 내리자 한국에서 건너간 세 사람은 놀라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화풍으로 볼 때 틀림없는 16세기 한국의 계회도였으며, 제시를 쓴 인물과 연대를 확인해보니 이 사실이 분명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중요한 발견에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등재번호가 없었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2014-6-001'이란 번호가 부여되었다.”

조인수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와 화조화에 대하여(문화재청, 2015)' 중

당시 아이크만 큐레이터가 한국조사단에 보여줬던 작품들은 리처드 컬렉션의 일부였다. 리처드 레인(1926~2002)은 미국 출신 미술품 수집가이자 거래상으로, 컬럼비아대에서 에도시대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일본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레인은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2002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 거주하면서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다. 레인이 상속자 없이 사망하자 2003년에 호놀룰루미술관은 교토시로부터 레인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일괄 구입하였다. 2만여 점에 달하는 작품 중 대부분은 일본 미술품이었으며, 중국과 한국 미술품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 한국조사단이 호놀룰루미술관에 파견되었을 때 리처드 레인 컬렉션은 정리가 덜 된 상태로 수장고에 있었다. 심지어 이 조선시대 그림은 일본식 장황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그림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것은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역사적인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회화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던 작품들까지 한국에서 온 조사단에 선뜻 보여줬던 미술관 측의 신뢰와 개방적인 태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국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은 ‘계회도(契會圖)’이다. 조선시대 계회도는 사대부들이 사교나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가진 뒤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그림이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와 같이 족자(軸) 형식으로 제작된 계회도는 보통 상단에 제목, 중단에 그림과 시문(詩文), 하단에 좌목(座目)으로 구성되었다. 모임의 참석자들은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과 직책 등을 기록한 좌목과 모임의 취지나 정취 등을 적은 시문을 남겼다. 그리고 참석자 수만큼 계회도를 제작해 서로 나누어 가졌다. 말하자면 계회도는 오늘날의 기념사진 같은 역할을 했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의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작품의 우측 상단에 제시(題詩)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대고 즐거이 어울림도 한때의 일이니
마음을 나눔에 꼭 옛 친구일 필요는 없네
관청에 근무하며 자주 모여 예의를 갖췄고
직분을 맡아 서로 협심하며 친하게 어울렸네
우연히 여가를 얻어 좋은 자리를 마련하니
모두 맑은 흥에 겨워 아름다운 약속을 맺네
자리 곁에 핀 노란 국화에 곧 바람서리가 닥쳐도
늦은 계절 이 깊은 우정을 서로 저버리지 마세. 만력병술년(1586) 중추절 명관거사 윤안성 晩節深情?不移
席邊黃菊風霜近
共將淸興結佳期
偶得餘閑?勝賞
?職同寅奉若私
臨衙數會交專禮
論懷何待舊相知
傾蓋驩然屬一時 萬曆丙戌中秋 冥觀居士 尹安性

'하와이에서 온 우리 옛 그림(국립고궁박물관, 2015)' 리플릿

이 시는 조선 중기 문관이었던 윤안성(1542-1616)이 지은 것이다. 윤안성은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만나서 회포를 풀고 화원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한 뒤, 당시의 감회를 담아 이 시를 적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그림 하단의 좌목 부분이 잘려 있어 윤안성 외에 다른 참석자들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를 통해 그때의 감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계회도의 또 다른 특징은 모임 장면뿐만 아니라 주변 산수도 함께 그렸다는 것이다. 주로 조선 초기에 그려진 계회도에서는 모임 장면보다 산수의 비중이 높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산수의 비중이 점점 적어지면서 모임이나 인물의 비중이 커진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를 언뜻 보면 산수화라고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안성이 가졌던 모임은 전각 안에 둘러앉아 있는 일군의 사람들 정도로 표현하고 산수 배경을 위주로 그렸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다른 계회도에서도 볼 수 있는 면모이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의 모임 장면을 확대한 부분. 윤안성의 모임 장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문화재청 제공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의 모임 장면을 확대한 부분. 윤안성의 모임 장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계회도를 한국으로 들여와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보존처리는 당시 조사단의 일원이었던 박지선 교수가 맡았다. 박지선 교수의 ‘계회도와 화조화의 보존처리(문화재청, 2015)’에 따르면, 화면의 보존상태는 제작된 지 400여 년이 지난 것을 감안했을 때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계회도는 일본식으로 장황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래 형태인 조선시대 전통 족자 형식으로 복원해야 했다. 박지선 교수는 조선시대 장황을 유지하고 있는 계회도들을 조사한 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와 제작시기가 근접하고 그림과 글씨 부분의 비율이 유사한 1581년 ‘기성입직사주도(보물)’ 등을 토대로 장황의 형태를 결정하였다.

보존 처리 전의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보존 처리 전의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보존처리 후의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보존처리 후의 계회도. 문화재청 제공


이듬해인 2015년, 새롭게 단장된 그림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와이에서 온 우리 옛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한 달간 전시되었다. 해외에 있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는 우리 문화재를 국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하와이로 돌아간 계회도는 연간 30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호놀룰루미술관 한국실에 전시되어 우리 전통회화의 미와 품격을 널리 알리고 있다. 문화재청과 호놀룰루미술관의 협력사업은 이후 3년간 지속되었고, 계회도를 포함해 총 5점의 작품이 보존처리가 되었으며, 보존처리를 마친 작품들은 양국에서 각각 전시되었다.

해외에 소재한 한국문화재를 조사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문화재들은 대부분 출토 또는 제작지가 우리나라임이 분명하고 민족적, 문화적 맥락상 우리 문화재라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소유권은 현 소장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많다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소장자의 의지와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해외 한국문화재들을 활용한 사업들은 추진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재청과 호놀룰루미술관의 협력사업은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 기고는 조인수의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계회도와 화조화에 대하여' 및 박지선의 '계회도와 화조화의 보존처리'를 참고로 작성하였으며, 두 논문은 '문화재청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소장기관 활용지원사업 결과보고서(2015)'에 수록되어 있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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