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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몰락하고 법률가만 남은 현실

입력
2021.07.21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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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지사, 최재형 전 감사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왼쪽부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지사, 최재형 전 감사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 대선 후보로 앞서 나가고 있는 이들은 정치의 초심자이거나 정당정치의 아웃사이더들이다. 다선 의원도, 정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지낸 전업 정치가도 뒷전이다. 수위를 다투는 후보들은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검사 출신도 있고 변호사 출신도 있고 판사 출신도 있다. 법대 출신을 합치면 압도적 다수가 법 전공자다.

법은 과거에 행해진 일을 따진다. 정치는 앞으로 행해질 일을 다룬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은 정치의 역할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발표하거나, 검사나 변호사가 국정 과제를 두고 경합한다면 이상할 것이다. 법치는 필요하고 법률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법치가 정치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법률가보다 정치가의 역할이 살아나야 민주주의도 미래가 있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정치가들이 통치하는 체제'를 뜻한다. 시민 통치나 다수 지배가 민주주의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르나, 시민도 다수도 통치하고 지배할 수 없다. 오로지 그들의 적법한 대표로서 정치가와, 그들의 결사체인 정당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최근 선거에서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정부가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정당의 정치인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임기 동안 정책을 주도해야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민주주의관은 더 현실적이다.

베버는 민주주의를 가리켜 ‘정치가 직업이자 생업이 되는 체제’라고 정의했다. 반대로 정치하는 일이 부업이자 무급 봉사직인 체제는 귀족정의 특징이다. 세비가 없다면 돈 걱정이 없고 시간 여유가 많은 소수 집단이 정치를 지배한다. 자신의 직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변호사들의 관직 사냥터로 정치가 전락하기도 쉽다. 따라서 베버는 가난한 시민도 가족을 건사할 소득의 기회를 상실하지 않고 정치가가 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평등한 참여’와 ‘평등한 대표’의 원리가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왜 ‘정치가에 의한 대리 정치’냐며 ‘시민의 직접 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고집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참주’의 출현이다. 요즘 말로 인기 있는 '포퓰리스트'가 승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은 자유롭고 정치가는 책임을 진다”는 공화정의 원리는 역전된다. 통치자의 자유를 위해 시민이 헌신하는 정치가 된다는 뜻이다. 통치자에게 책임을 부과할 길도 없다. 오히려 그를 지키지 못해 시민들이 미안해해야 한다. 이들 정치의 아웃사이더들은 정당보다 여론을 따른다. 시민참여와 여론조사는 그들의 종교다. SNS와 시민팬덤은 그들의 무기다. 그 위세가 클수록 지식인과 전문가의 굴종을 얻기도 쉽다. 정당도 결국에 가서는 대통령 후보 개인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계산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당은 자신의 후보를 길러낼 능력을 스스로 버렸다. 선거 때마다 정치가를 물갈이하는 것을 개혁이라 착각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을 영입하는 것을 승리 전략으로 여겼다. 당연히 정당에 들어가 정치를 배우고 익힐 유인은 사라졌다.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정치할 기회를 더 쉽게 얻는 역설의 정치가 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정치가 좋아지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누굴 탓하랴. 정당정치를 스스로 버린 정당들의 자업자득일 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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