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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가’와 ‘젖’ 사이에서

입력
2021.07.20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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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호주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라리사 워터스 상원의원이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그는 국회 회의장에서의 모유 수유를 허용하자는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첫 번째로 의회에서 젖을 물린 의원이 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7년 6월 호주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라리사 워터스 상원의원이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그는 국회 회의장에서의 모유 수유를 허용하자는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첫 번째로 의회에서 젖을 물린 의원이 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생각해 보면 혼란스럽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물론 분유가 일반화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버스 안에서, 저잣거리에서 젖을 물리는 엄마들을 자주 봤다. 먹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심청 아비처럼 젖동냥 다니는 일도 흔했다. 아프리카나 몽골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아무 데서나 젖을 먹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들은 왜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을까.

지금의 완모(完母, 완전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칭얼대면 공공건물의 밀폐된 ‘편의시설’을 찾아야 한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됐다. 문명의 발전은 모유 수유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모성’의 하나로 만들었다.

그 의원님께는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난 한편으론 아쉬웠다. 이왕 조금 더 파격적 ‘시위’를 했으면 어땠을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7월 5일 출산휴가를 마치고 두 달 된 아들을 유아차에 태워 등원했다. 산모와 유아의 국회 회의장 동반 출입을 허용하라는 촉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용 의원은 이날 모유 수유를 하지는 않았다. ‘차마’ 못 한 것일까. 그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옷고름을 풀고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봤다. 난리가 났을 거다. 우선 언론은 그 사진을, 그 영상을 보도할지 말지를 놓고 아마 꽤 고민했을 거다. 보도를 했어도 가슴 부분은 모자이크 편집으로 가려줬을 게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는 공공장소에서의 모유 수유 문제를 놓고 한바탕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거다. 그 ‘기회’가 사라졌다.

그간의 일들을 보건대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권리나 지위와 관련한 사안은 난리법석이 나야 빨리 풀렸다. 사실 20세기 들어와 여성해방운동 역사가 그러했다. 참정권부터 미투까지 여성들이 투쟁해서 쟁취했다.

그날 TV 뉴스는 외국 의회 회의장에서 의원들이 버젓이 모유 수유를 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가슴을 드러낸 채 젖을 먹이며 법안 발의 연설을 하는 호주 상원의원, 동료 의원의 아기를 안고 젖병을 물리고 이리저리 어르며 회의를 주재하는 뉴질랜드 국회의장. 앵커는 “우리는 언제쯤?”이란 멘트를 던졌다.

같은 아시아권의 대만만 해도 이미 10년 전에 법으로 정했다. 그 누구도 공공장소에서 모유를 수유하는 여성을 금지 또는 방해하거나 이동하라고 요구하지 못하게 했다. 어린이 전시관에서 수유하다 쫓겨난 여성이 뉴스가 되면서 엄마들이 연대투쟁한 결과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제발 아이 낳아 달라고 호소하는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법이 아직도 없을까. 권미혁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모유 수유 권리 보장 3법’은 폐기된 후 소식이 없다.

보기 흉하다고, 불편하다고, 교양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남성 쪽이 더 그렇다. 이 문제는 또 젠더 갈등으로 번질 것이다. 여자의 가슴골은 흘낏흘낏 훔쳐보면서, 왜 젖 먹이는 젖은 보기 안 좋다고 생각할까.

산후조리원에서 생애 처음 수유를 하다 문득 혼란에 빠졌다는 산모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젖은 잘 나오니?”라는 주변의 인사를 들으면서 은밀히 ‘슴가’로 불릴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되어버린 ‘젖’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졌다는 고백이다. “슴가든 젖이든 다 내 가슴인데, 출산 전에는 음란물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동네북이 되었다.”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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