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추진했던 한일정상회담 개최도 무산됐다. 청와대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막판까지 정상회담 성사를 추진했으나 일본 측으로부터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했고, 막판 일본 외교관의 막말 등으로 악화한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물밑 협의 과정에서 양측 간 이해의 접근은 있었던 만큼 회담 개최를 위한 보다 나은 시기를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 계기에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정상회담 협의에 상당한 접근은 있었지만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까지도 청와대 참모진과 방일 여부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일본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일본에 타진해온 '정상회담의 성과'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7일 "한일정상회담과 그 성과가 예견된다면 방일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의 전제로 '성과'를 강조해 왔다.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임을 감안하면, 당초 최대 현안인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의 폐지 등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은 확답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수출규제 해제만 이뤄졌어도 문 대통령 방일을 추진할 명분이 있었지만 일본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샅바싸움을 하는 와중에 일본 언론에서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을 흘리는 잇단 보도들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를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라고 판단한 청와대에서는 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됐다. 지난 11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최근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올림픽 참석이나 한일관계 개선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인상이 있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에 빗댄 사실이 알려지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청와대는 소마 공사의 본국 송환이나 경질 등 일본 측의 가시적 조치를 기대했지만,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외교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은 굉장한 유감"이라면서도 인사 조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의 전제였던 '성과'가 불투명하고 소마 공사의 막말 논란으로 악화한 국내 여론을 감안한 끝에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최종 포기한 셈이다. 한일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 없이 '관계 개선' 메시지만 발표할 경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으로 당장은 양국 간 관계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8월 한일 외교부장관 회의를 열고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하반기에 열리는 다자 국제회의 등을 계기로 양국이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박 수석은 이날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 결정을 알리면서도 "도쿄올림픽은 세계인의 평화 축제인 만큼, 일본이 올림픽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에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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