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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사·경비원·항해사… '본캐'는 다르지만 '부캐'는 모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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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사·경비원·항해사… '본캐'는 다르지만 '부캐'는 모두 '작가'

입력
2021.07.23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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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불문 직업 에세이 '업세이' 봇물
'성공 스토리보다 동료·친구 이야기에 관심' 분석
멀티 플랫폼 시대 '직업'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최근 직업 에세이를 출간한 저자들. 도배사 배윤슬(왼쪽부터), 항해사 김연식, 라디오 PD 차현나씨. 각 저자 제공

최근 직업 에세이를 출간한 저자들. 도배사 배윤슬(왼쪽부터), 항해사 김연식, 라디오 PD 차현나씨. 각 저자 제공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토로해 보았다. 이 직업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도 써보려 했다

차현나 TBS 라디오본부 PD

이달 초 출간된 에세이 '당신과 나의 주파수를 찾습니다, 매일'의 저자 차현나씨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라디오PD로 16년간 일해 온 경험을 기록한 이 책은 문학수첩 출판사가 선보인 '일하는 사람' 에세이 시리즈의 일부다. 기상예보관이 쓴 '맑음, 때때로 소나기',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서 일하는 한국인 항해사의 일과 삶을 담은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배에 탑니다'와 함께 발간됐다. 이 출판사는 앞으로도 헬스 트레이너 등 다양한 직업인의 에세이를 발간할 예정이다.

전문직에서 평범한 직업군으로

올해 출간된 직업 에세이들. 한지은 인턴기자

올해 출간된 직업 에세이들. 한지은 인턴기자

출판계에서 에세이가 수년째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일터에서의 경험과 단상을 적은 '직업 에세이'가 꾸준히 인기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간행하는 출판 전문잡지 '기획회의'가 지난 2019년 출판계 키워드로 '업세이(직업+에세이)'를 꼽았을 정도다.

최근에는 의사·교수·변호사 등 전문직에 쏠렸던 직업군이 다양해진 게 특징이다. 올 들어서만도 문학수첩의 일하는 사람' 시리즈 외에도 야간 미화원(김영빈 '나는 밤의 청소부입니다'), 도배사(배윤슬 '청년 도배사 이야기'), 아파트 경비원(최훈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도서관 사서(양지윤 '사서의 일'), 번역가(권남희 '혼자여서 좋은 직업'), 누드모델(하영은 '나는 누드모델입니다') 등의 직업 세계를 다룬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이는 젊은 독자들의 직업관이 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문학수첩의 이은주 편집자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도 평범한 직장인의 출연이 잦아지는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이전에 접하기 힘들었던 직업인 이야기에 대한 콘텐츠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주요 독자층이 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뜬구름 잡는 성공 스토리보다 동료나 친구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다채널·다매체 시대에 콘텐츠 수요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확실한 인기를 보장하는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직업'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TV의 경우 채널이 많아져 콘텐츠를 포괄하는 영역도 확장하면서 건강·연예·역사 등과 더불어 보통 사람들의 직업 이야기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각자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

특정 직업의 세계를 그린 일부 직업 에세이는 직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담고 있다.

특정 직업의 세계를 그린 일부 직업 에세이는 직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담고 있다.

다양한 갈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들 직업 에세이에는 책이 타인의 삶을 폭넓게 이해하는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담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고 활동한 누드모델이자 '한국 누드모델협회' 설립자인 하영은씨가 쓴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는 누드모델을 향한 왜곡된 시선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항변을 담고 있다. 하씨는 책을 통해 예술·의학·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누드모델이 활약하고 있지만 인식과 처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역설한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도 피상적으로만 알아 온 경비 노동자라는 직업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책을 기획한 출판사 정미소의 김명섭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경비 노동'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경비 노동자로서의 기록을 담담하게 그린 책을 통해 이 직업의 세계를 잘 알게 되면 '입주민 갑질' 같은 좋지 않은 소식도 줄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직업 에세이가 많아진 것은 글쓰기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최훈씨는 장강명 작가의 글쓰기 유튜브 강연을 보고 에세이를 출간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최씨는 "'당신도 책을 쓸 수 있다'는 장 작가의 한마디에 용기를 냈다"며 "경비원 관련 서적이 시중에 일부 나와 있기는 하지만 현직 종사자로서 현실 반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간 계기를 밝혔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으로 정보 생산의 민주화, 즉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말하는 시대가 됐다"며 "또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프로슈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형화된 직업관에서 벗어나는 흐름도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다만 쏟아져 나오는 직업 에세이 중 독자 눈에 들기 위해서는 삶의 진정성이 얼마나 담겼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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