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선흘의 여름'(에픽4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코로나19가 새삼 우리에게 일깨운 게 있다면, 인간이 지구의 절대적인 지배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고작 20만 년 전에 출현한 주제에, 온갖 자원을 남용하고 지구를 순식간에 파괴한 인간은 그토록 자부하던 과학 기술로도 막아내지 못하는 전염병의 습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인류는 지구 역사상 가장 폭압적인 종(種)일 수는 있을지언정, 지구의 주인일 수는 없다. 지구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과 식물, 그리고 모든 미생물이다. 에픽 4호에 실린 김혜진 작가의 단편소설 ‘선흘의 여름’은 바로 이 지구의 또 다른 주인들이 인간에게 띄우는 경고의 편지일지 모른다.
소설의 주인공은 ‘황색망사점균’이다. 흙과 이끼, 낙엽 등에서 서식하는 노란 색깔 점균으로 720개의 성별을 갖고 있다고 한다. 뇌가 없음에도 판단력과 기억력 같은 학습 능력이 있으며,서로 떨어져 있던 점균과 만나 학습 능력도 전달할 수 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제주도 선흘 곶자왈에 서식하는 황색망사점균이 실시간으로 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자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심지어 선흘곶에서 세 사람이 실종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국립산림과학원 소속 연구원인 수인은 경찰과 함께 선흘곶으로 조사를 나간다.
경찰은 “이게 실종자들을 잡아먹은 거”라며 황색망사점균을 실종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정작 수인은 다른 사실을 발견한다. 황색망사점균이 오염된 토양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수인은 곶자왈 바로 옆에 들어선 리조트랑 골프장이 오염에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경찰은 이렇게 대꾸한다.
“곶자왈이 말이에요. 개발로 사라지니 뭐니 다들 난리잖아요. 그런데 그거, 다들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개발해서 일자리도 나고 돈도 나는데 어떻게 그냥 둬요? 자연? 나무 살리고 사람은 죽이겠다는 건지 난 통 이해가 안 돼.”
사실 선흘 곶자왈에서는 이전에도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수많은 제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 4·3사건이다. 소설은 과거 4·3사건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비극의 역사를 되짚으며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다. 인간이 자연보다 위대하다는 오만함, 그 오만함을 바탕으로 같은 종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무자비함은, 결국 인간 자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 파멸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한 달간 지구는 온갖 기후 재앙을 다 겪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는 평균 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더위’로 인해 사망자가 쏟아졌고 독일 서부와 벨기에, 네덜란드에는 집중호우로 17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인간의 무력함을 실감케 하는 이런 재난은 인간에게는 재앙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앙갚음이다. 소설 속 수인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나무를 살리면 사람도 살아요. 제주를 먹여 살리는 건 이 나무들, 돌들, 풀들이에요.” 제주만 그럴 리 없다. 자연을, 지구를 살려야 사람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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