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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 부흥올림픽’이라는 이데올로기

입력
2021.07.21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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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딜레마에 빠진 일본 시민 사회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도쿄올림픽 개최가 임박했다. 코로나19 재유행 때문에 내심 꺼려하면서도 ‘후쿠시마를 도와야 한다’는 거부하기 힘든 명분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과 일본의 시민 사회가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도쿄올림픽 개최가 임박했다. 코로나19 재유행 때문에 내심 꺼려하면서도 ‘후쿠시마를 도와야 한다’는 거부하기 힘든 명분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과 일본의 시민 사회가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역대급 규모의 도쿄올림픽 자원봉사단

일본인 지인이 소셜 미디어에 ‘고민 끝에 올림픽 자원봉사를 포기했다’는 포스트를 올렸다.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수영 경기장에서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와중에 해외 선수단과의 접촉을 포함해 대외 활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올림픽 자원봉사에 큰 부담을 느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워했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아빠의 결단을 이해해 주었다고 한다. 2020 도쿄올림픽 강행에 대한 일본 국내 여론은 좋지 않다. 글로벌 팬데믹 속에서 강행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에 대한 불안이 상당하다. 적극적으로 항의 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미 대회 중지를 선언할 적기를 놓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올림픽이 반갑지는 않아도 큰 불상사 없이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국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반가운 일로 받아들였다. 일본 시민들이 아낌없이 보내 온 응원의 바로미터는 역대급이라고 할 만한 도쿄올림픽 자원봉사단의 규모다. 조직위원회(조직위)가 총괄하는 경기장 내 자원봉사자(필드 캐스트)가 8만 명, 도쿄도가 모집한 시내 자원봉사자(시티 캐스트) 3만 명, 그 밖의 지역에서 활동할 1만5,000여 명을 합치면 12만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설 예정이었다. 모집은 벌써 2년 전에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도 일찌감치 실시되고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대활약을 했다. 하계 올림픽이 동계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대여섯 배에 가까운 시민이 선뜻 자원봉사자로 나섰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1만3,000여 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포기했다. 성화를 봉송할 예정이었던 연예인과 사람들이 가두 행사에 협조할 수 없다며 사퇴하는 해프닝도 잇따랐다. 조직위 인사의 성 차별 발언 등 불상사가 빈발하며 자원봉사의 의미도 빛이 바랬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조직위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집에서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장으로 출근할 것’을 지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가뜩이나 여론이 좋지 않은데 유니폼 차림으로 대중교통 수단에 오르는 것에 부담스러움을 토로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경기장을 오가며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관중 개최가 결정되면서 국내외 관람객의 관광 안내를 도맡을 예정이었던 시내 자원봉사자들은 활동 자체가 사라졌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자원봉사자 유니폼이 판매 물품으로 대거 올라왔다는 씁쓸한 뉴스도 있다. 더 나빠질 수도 없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도쿄올림픽이 개막한다.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 행사에 힘을 보태는 자원봉사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볼런티어’의 문화

일본에서 자원봉사의 문화는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솔선해서 자원봉사 활동에 선뜻 나선다. 수십 년 동안 유수의 식음료 제조업체에서 일해 온 지인은 여가 시간을 활용해 대지진 등 재해 상황에서 조달 가능한 간이식에 대해 연구했다. 정년 퇴직한 뒤에는 지역 대학과 공동으로 재해 급식에 대한 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결과를 대가 없이 사회에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느냐”며 이 일에 열정을 쏟는다. 한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자원봉사가 많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불우 이웃을 돕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자선 활동이라는 인상도 있다. 또는 진학이나 취업을 앞둔 젊은이가 이력서에 기재할 경력을 의식해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경향도 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삶이 안정된 장년층이 자원봉사에 더 적극적이다. 오랜 사회 생활 속에서 축적한 전문성을 공동체에 환원하는 ‘재능 기부’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다.

‘볼런티어(ボランティア, 자원봉사를 뜻하는 영단어 ‘volunteer’를 일본어로 옮긴 말)’라는 어색한 외래어가 일본 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95년 간사이 지방을 초토화시킨 한신대지진이었다. 한겨울 새벽에 일어난 이 대지진으로 오사카 서쪽의 대도시 고베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도심으로 진입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포함해 교통, 통신, 전기 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인프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피해 수습은커녕, 인명 구조 인력이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재해 현장으로 구조 물품을 실어 나르고 피난소에서 이재민을 도왔다. 후원금을 보내거나 PC통신(인터넷의 대중화 이전에 사용되던 폐쇄형 컴퓨터 네트워크)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후방에서 지원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젊은이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재해 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쾌락적 소비를 즐긴다는, 소위 ‘신인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도 되었다. 지진 발생 이후 1년 동안 재해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한 시민은 137만 명이 넘는다. 이전에도 종교 단체나 회사 등 조직이나 집단 단위의 자원봉사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신대지진을 기점으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나는 자원봉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본 경제기획청은 이 해를 ‘자원봉사 원년’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경험은 일본 시민 사회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고베의 재해 현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샐러리맨에서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로 명함이 바뀐 지인도 있다. 많은 시민들이 지진, 폭우 등 큰 재해가 있으면 방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선다. 자원봉사자가 쇄도하는 것이 현장에서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다. 199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장롱 속 금수저를 기부한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이 외화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 시민들이 국가라는 경제 공동체의 일원임을 실감하는 계기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대지진 등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 돕고 공생을 도모하는 시민 공동체의 존재를 체감한다. 일본 시민들에게 재해 복구에 힘을 보태는 것은 단순한 자원봉사의 의미를 넘어선다.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공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부흥 올림픽’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일본 시민 사회

도쿄올림픽은 후쿠시마 지역의 재기를 위한 ‘부흥 올림픽’을 대대적인 목표로 내걸었다.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시민 중에는 보수적 국가주의 강화를 원하는 일본 정부의 내심에 동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의 평화로운 교류에 기여하고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을 꾀하겠다는 ‘선의’에 힘을 보태려는 시민이 대다수일 것이다. 일본 국외에서는 후쿠시마라고 하면 원전 사고로 불모지가 되었다는 인상뿐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 그곳은 사고 이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다. 이를 올림픽 프로젝트와 연결 지음으로써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려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어떻게 천문학적 규모의 나랏돈을 퍼부어야 하는 스포츠 대회가 후쿠시마 지역의 진정한 부흥에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악화일로인 원전 사고의 실상을 은폐하고, 지원이 절실한 주민들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 있는 한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도쿄올림픽=부흥올림픽’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본 시민 사회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김경화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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