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11만명 '접종 의무 반대' 시위 나서
기본권 중시에 '백신 회의론'까지 겹쳐
그리스·이탈리아서도 반대시위·소송전
유럽 각국서 이어지는 핵심 가치 충돌
“백신 접종은 개인의 자유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를 누빈 시위대 1,500여 명은 이같이 외쳤다.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파리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이날 동부 스트라스부르와 북부 릴, 남부 몽펠리에, 마르세유 등 전역에서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프랑스 내무부가 추산한 이날 시위자 수는 전국에서 11만4,0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14일 첫 시위 당시의 1만7,000여 명과 비교하면 사흘 만에 7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의 주장은 단 하나,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佛, 자유 침해ㆍ백신 불신 분위기
최근 유럽 각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백신을 안 맞을 경우 일상에서 지장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을 줌으로써, 자연스레 접종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일반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2배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그러나 반(半)강제적 조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가장 격렬한 곳은 프랑스다. 지난 12일 정부가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을 밝힌 뒤부터 시위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내달부터 식당, 카페, 쇼핑몰 등에 들어가려 한다거나 기차 또는 비행기에 타려면 일종의 예방접종 증명서인 ‘보건패스’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48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지 않았을 경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는 등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도록 한 셈이다. 9월 중순부터는 의료진이 백신 접종을 거부할 경우 해고나 급여 중단 등의 제재까지 받는다.
문제는 시민들이 이러한 정부 조치에 대해 “기본권인 ‘선택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파리 시위에 나선 ‘크리스텔’이라는 이름의 한 시민은 로이터통신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갖는다. 대통령조차도 개인의 건강을 결정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만연한 백신 불신 정서 역시 ‘반(反)백신’ 분위기를 부추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년간 보건당국의 크고 작은 오판이 쌓이면서 프랑스는 백신에 가장 회의적인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16일까지 백신 접종을 한 차례 이상 완료한 프랑스인은 5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웃나라 영국(88%)과 비교하면 33%포인트나 낮다. 방역 최일선 의료 현장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의료진은 필수인력으로 분류돼 접종 최우선 순위에 놓였지만, 프랑스에서 백신을 1회 이상 맞은 의료진은 10명 중 6명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접종을 계속 거부하고 있단 의미다.
공중보건과 자유의 충돌... 또 하나의 난제
유럽의 다른 나라 상황도 다르진 않다. 각국이 백신 미접종자에 벌칙을 주는 조치를 속속 내놓자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정부의 보건정책이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의료 종사자와 요양시설 직원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접종을 거부할 경우 업무에서 배제키로 하자 수천 명이 반대 시위에 나선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선 시민 5,000여 명이 거리로 뛰쳐나가 “모든 사람은 선택의 권리가 있다”면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북부 밀라노, 브레시아, 파르마 지역의 의료진 3,000여 명이 현지 보건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등 법정공방까지 시작됐다. 파스콸레 사코 이탈리아 보건노동조합 사무총장은 “정부는 우리를 ‘유용한 바보’ 취급을 하고 있다”며 “마치 독재정권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10월부터 요양원 종사자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기로 한 영국에서도 반대 청원에 9만3,000명이 이름을 올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면서까지 지역사회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게 정당한지를 두고 유럽에서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감염병 확산세가 좀체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제 유럽 사회는 ‘백신’으로 대표되는 공공 보건 조치와 ‘자유’라는 전통적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또 하나의 난제에 직면하게 됐다. 의무 접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후생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조가 유럽 각국에서 확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발트해 연안 국가 라트비아는 9월 중순까지 백신을 맞지 않는 직원을 고용주가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예정이다. 벨기에 역시 조만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이란 게 외신들의 설명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델타 변이 확산으로 유럽 각국이 접종 강화를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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