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 인정 안 돼”
검찰 무리한 수사에 대한 비판 커질 듯
이동재 측 "검언유착 실체 없음 밝혀져"
한동훈 "정의와 상식의 불씨 남아 있어"
검찰 고위 간부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취재원에게 여권 인사 비리 정보를 알려달라고 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이동재(35) 전 채널A 기자가 1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3월 언론 보도로 의혹이 불거진 지 1년 4개월 만의 법적 판단이며, 이 전 기자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지 11개월 만이다. 법원이 이날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비판도 커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이날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동재 전 기자와 회사 후배인 백모(30) 기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기자 등이 취재윤리를 위반한 건 명백하지만, 형사 책임을 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강요죄 구성 요건인 협박, 즉 ‘해악(나쁜 일)의 고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무죄 판단 이유였다.
이동재 전 기자는 지난해 초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비위 정보를 캐기 위해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56)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협박해 제보를 강요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 기자가 옥중에 있는 이 전 대표에게 5차례 편지를 보내고, 이 전 대표 측근인 ‘제보자X’ 지모씨를 3차례 만나 “유 이사장 관련 제보를 하지 않으면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돼 이 전 대표와 가족들이 중한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는 게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이었다.
홍창우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이 전 기자가 검찰을 좌우할 수 있다고 피해자(이철)가 믿게 할 만한 언동이 있어야 했다”고 전제했다. 이 전 기자가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제보를 종용한 건 맞지만, 실제 수사는 검찰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개 편지에선 이 전 기자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적·묵시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없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또 이 전 기자가 ‘제보자 X’를 통해 이철 전 대표에게 전달하려 한 내용도 정보를 주면 검찰 관계자를 통해 선처를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지, ‘제보를 안 하면 벌을 주겠다’는 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홍 부장판사는 다만 취재윤리를 위반의 점에 대해선 엄하게 꾸짖었다. 그는 “이 전 기자는 특종 취재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수감 중인 피해자를 압박하고, 처벌 가능성까지 운운하며 취재 정보를 얻으려 했다”며 “이는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MBC가 지난해 3월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이 전 기자와 공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전 기자를 기소하면서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았고, 홍 부장판사도 한 검사장 관여 여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이 의심한 공모관계의 한 축인 이 전 기자의 무죄 선고로 '검언유착' 의혹은 사실상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났다.
이 전 기자 측은 선고 직후 “어떠한 정치적 배경으로 이번 사건이 만들어졌는지, 정치적 외압은 없었는지 동일한 강도로 철처히 수사해줄 것을 검찰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 검사장도 입장문을 내고 “이 사회에 정의와 상식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로서 잘못이 바로잡혀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항소 제기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