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살이 으스러진 외상, 마음속 사망진단서 썼던 그가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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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이 으스러진 외상, 마음속 사망진단서 썼던 그가 살아왔다 

입력
2021.07.27 17:00
수정
2021.08.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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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윤수 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래환자 명단 화면에 그 여성 이름이 있다. 지난가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이름이다. 울부짖는 목소리와 비참하고 잔인하게 으스러진 허벅지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중증외상환자가 해가 지나 외래진료를 예약하는 경우는 대부분 미처 받아가지 못한 서류나 보험회사 직원이 대신 진료 기록을 받으러 올 때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처참했던 그날을 생각하며 나는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믿는 종교도 없고 권역외상센터에서 중증외상환자들의 수많은 죽음을 보고 내가 쓴 사망진단서 날짜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마음속에 작성한 사망진단서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휠체어를 타고 방긋 웃으며 남편과 들어오는 그가 보인다. 나는 지난가을 사고 직후 잠들기 직전 마지막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기에 단번에 알아봤다. 이 병원을 떠나기 전 여러 관들을 꽂고 퉁퉁 부은 얼굴과는 달리 건강한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고통으로 울부짖는 목소리가 아닌 너무나 밝고 건강한 목소리다. 나는 이 순간이 꿈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지난가을이었다. 소리가 아니라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절규였다.

“너무 아파요. 허벅지, 다리가 너무 아파요. 아파 죽을 것 같아요.”

“이제 자게 해줄게요. 지금부터 안 아프고 잠들게 해줄게요."

그를 강제로 잠들게 하고, 입안에는 관을 넣고 인공호흡기에 숨 쉬는 것을 맡겼다. ‘아파 죽을 것 같아요’가 그가 이 세상에서 내는 마지막 목소리가 아니고, 분명 다시 살아나 고통의 절규가 아닌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시 말할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면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항상 있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다칠 수 있는지 한계를 보여주고, 몸이 산산조각 으스러진다는 말은 그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사람 몸은 내부 장기와 뼈를 보호하기 위해 근육, 피하지방과 피부로 단단하게 겹쳐져 있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수백 배 무겁고 커다란 트럭에 깔렸다. 골반 뼈 반쪽이 으스러지며 한쪽 골반부터 엉덩이, 허벅지에서 다리까지 피부, 근육이 떨어져나갔다. 119구조대에 실려 온 그는 한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피부가 덜렁거리며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치료를 뼈부터 시작해야 할지 골반 근육, 피부, 혈관 어디부터 시작해 살려내야 할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25톤 트럭에 깔린 그에게 골반과 허벅지가 몸통에 붙어 있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근본적 치료가 아닌 오직 생존을 위해 하나하나 시작했다. 피부 일부 봉합, 골반 뼈 임시 고정, 인공항문을 만들어 주는 수술을 했다. 수술하는 동안 그는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나는 입, 코, 목에 관이 주렁주렁 달린 그를 보고 매일 눈물만 쏟아내는 그의 남편에게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하루가 지날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그에게 피부부터 근육, 뼛속으로 파고드는 감염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썩어가는 근육과 피부를 수차례 도려내는 중에 의식이 없어지고 동공반응이 사라졌다. 처음 다칠 때 허리뼈 안 척추신경을 싸고 있는 막이 손상되었다. 썩어가는 엉덩이 근육이 심해져 가까스로 버티던 그 막마저 힘이 빠져 뇌척수액이 쏟아져 나왔다. 뇌를 보호하는 뇌척수액이 빠져 뇌가 부어버리고 의식은 없어졌다. 설상가상보다 더하게 생명 끝자락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그녀였다.

엉덩이, 허벅지가 썩고 뇌가 부어가면서 의식 없는 그녀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론 사망진단서를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피부이식 전문 의료진과 시설이 부족한 이곳에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썩어가는 피부와 근육이라도 살리기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 화상 전문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하였다. 나와 매일 울음으로 치료를 함께하던 남편은 전원 직전 마지막 남은 눈물을 울컥 쏟으며 꾸벅 인사하였다. “나중에 와서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마음속 사망진단서를 쓴 그가 지금 내 앞에 있다. 나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 아닌 치료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머릿속에 지난가을 적어놓은 사망진단서를 얼른 지워버리고, 그녀와 남편에게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사진 속 너무나 밝게 웃는 그녀 모습이 보인다.

중증외상환자들과 함께한지 10여 년, 낭떠러지 끝에 발 하나 걸친 환자들과 매일 함께한다. 때로는 힘들고 내 능력에 감당 안 되는 환자를 만날 때 나는 그녀와 찍은 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한다.

'낭떠러지 끝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유일하고 기댈 수 있는 주치의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환자는 살아서 가족과 함께 밝게 웃을 수 있다.'

그를 다시 만나면 말해주고 싶다. "그저 살아주어서 감사합니다."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인이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뉴스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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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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