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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독립운동', 오늘도 진행 중

입력
2021.07.1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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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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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잠시 머물 때 한 주를 못 버티고 아시아 식당을 찾아 나섰다. 맛이 예측되는 반가운 음식들이 즐비했는데, 김에 돌돌 말린 밥을 식당에서는 스시(Sushi)라 불렀다. 서양에서 ‘가라오케’나 ‘스시’는 이미 보통명사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사람이 만들면 ‘김밥(Gimbap)’이다. 한국산 김은 이미 질 좋고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어, 한때 ‘까만 해초’라 풀이되다가 이제는 ‘김(Gim)’으로 불린다. 그 김으로 만든 밥을 나누면서 ‘김밥’이라고 알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야기의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와 본다. 한국의 일상생활에는 여전히 일본어가 남아 있다. 여름이 되면 우선 ‘나시, 뗑뗑이무늬 원피스, 칠부바지’ 등이 등장한다. 우리말로는 소매가 없는 ‘민소매’, 큰 점이 찍힌 ‘물방울무늬’, 길이가 정강이까지 오는 ‘칠푼바지’이다. '할푼리'란 말로 익숙한 '푼'은 1할의 10분의 1이다. 음식에서 일본말의 생명력은 고래 심줄보다 질기다. 한국 땅에서 ‘메밀국수’가 아니라 소바가, ‘곁들이 안주’가 아니라 쓰키다시가 쓰인다. 일식집 안이 아닌데도 ‘생선회, 초밥, 복국, 김말이’를 사시미, 스시, 복지리, 마키가 대신한다.

‘단도리하다, 유도리 있다, 쿠사리 주다, 날씨가 꾸무리하다’ 같은 표현뿐만 아니다. 일본어 번역투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우리 회사에 있어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등도 자주 지적된다.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쓰는 이런 말들을 ‘무심코’나 ‘편리성’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누구나 다 이해하는 상용표현인데 무슨 문제냐는 반박도 있을 것이나, 분명한 것은 우리말에 맞는 표현이 없어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995년 8월 12일,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발표가 신문에 났다. 국민학교는 천황에 충성하는 국민을 양성하겠다는 ‘황국신민학교’의 준말로, 소학교였던 교육기관을 1941년에 황제 칙령으로 바꾼 것이다. 광복 50주년인 8월 15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무심코 사용하는 일본말 잔재를 지우는 것은 한국 사람 마음에 남은 말뚝을 뽑아내려는 노력과 같다. 언중이 거부하는 말은 힘을 잃는다. ‘땡깡’은 뇌전증 또는 간질병의 일본말 발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부모라면 적어도 자기 아이에게는 쉽게 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뽑힐 말에다가 생명을 주고 있는 주체는 언중 곧 ‘그 말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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