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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치밀한 ‘블랙 위도우’ 계산법 

입력
2021.07.17 1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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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영화 '블랙 위도우'는 2년 만에 선보이는 마블 영화로 국내외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위도우'는 2년 만에 선보이는 마블 영화로 국내외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할리우드 영화 ‘블랙 위도우’는 극장가 구원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붕괴 직전에 놓인 극장가에 이보다 반가운 영화는 없다. 2년 만에 선보이는 마블 영화인데다 요즘 드문 블록버스터다. 7일 국내 개봉해 15일까지 169만 명이 봤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취다. 한국이 ‘마블공화국’임을 또 한번 확인한 셈이다.

북미에서도 상영 첫 주말 극장에서 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블랙 위도우’는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 공개됐다. 디즈니플러스는 ‘블랙 위도우’ 배급사인 월트디즈니컴퍼니(디즈니)의 자사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다. 디즈니 공식 발표에 따르면 ‘블랙 위도우’가 디즈니플러스에서 주말 동안 거둔 흥행 수익은 6,000만 달러다.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 흥행 수치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블랙 위도우’가 공개 첫 주 흥행 수익이 1억 달러를 넘겼다는 걸 알리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극장과 디즈니플러스 동시 공개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뮬란’과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함께 선보였다.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 유료 가입자가 추가 비용을 내면 극장에 가지 않고도 최신 화제작을 안전하게 거실에서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코로나19로 북미 극장 대부분이 문을 닫은 시기였으니 극장과 디즈니플러스 동시 공개는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블랙 위도우’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 곳곳이 백신 접종 효과를 보고 있다. 북미 지역 극장 중 81%가량이 정상 영업을 하고 있다.

디즈니에게 극장은 반갑지 않은 동업자다.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에도 마찬가지다. 극장은 영화 상영 대가로 매출 50%가량을 가져간다. 반면 디즈니플러스에서 거둔 수익은 오롯이 디즈니 몫이다. 자신들만의 플랫폼을 구축한 상태에서 굳이 이익을 나눌 필요가 없다.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블랙 위도우’를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에 선보인 이유다. ‘블랙 위도우’ 동시 공개는 개봉 방식 변경을 위한 실험인 셈이다.

실험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디즈니플러스에서 ‘블랙 위도우’를 보기 위해선 29.95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디즈니플러스 200만 계정이 ‘블랙 위도우’를 구매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계정수(1억300만 개)와 ‘블랙 위도우’의 화제성을 감안하면 미지근한 반응이다. 디즈니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결과다.

영화 산업 초기 미국에선 구역을 나눠 최신 영화를 순차적으로 상영했다. 대도시 번화가의 시설 좋은 극장에서 먼저 상영한 후 변두리 극장에서 상영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을 중심부 극장으로 최대한 끌어들인 후 구석까지 찾아가는 방법으로 수익을 극대화했다. TV와 비디오, DVD, 주문형비디오(VOD)가 등장하면서 이 방식이 변형돼 적용됐다. 창구마다 일정한 시기를 두고 영화를 공개해 각 창구마다 최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디즈니는 ‘블랙 위도우’를 극장에서만 상영한 후 디즈니플러스에 독점 공개했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렸을지 여러모로 따질 듯하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도 코로나19를 이유로 극장과 OTT 동시 공개가 잇달아 이뤄졌다. ‘서복’이 극장과 OTT 티빙에서 동시에 선보인 이후 ‘미드나이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극장을 배제하려는 영화 공개 방식은 스튜디오의 지갑을 더 불려줄까,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이는 행위와 마찬가지일까. 계속될 디즈니의 실험을 주목해야 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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