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정말 폐지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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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가 정말 폐지되면 좋겠다

입력
2021.07.24 19:00
수정
2021.07.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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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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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아홉 명 정원의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 되어야
충분할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난 언제나 아홉 명이라고 답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Her View : 여성의 관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16) 그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요 (7월 15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론이 재점화된 한 주였습니다. 불을 지핀 건 유승민 전 의원. 지난 6일 여가부 예산으로 군 복무자를 지원하겠다며 여가부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이어받아 젠더갈등해소위원회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요. 두 사람이 속한 국민의힘의 이준석 대표는 "애초 역할이 없는 부서" 같은 말로 여가부를 격하하며 이들의 주장에 호응하고 있습니다.

정치권 유력 인사들의 주장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데요. 여가부는 세금을 낭비하고, 무능력하며, 여성만을 위한 이기적인 부처라는 남초 커뮤니티 속 여론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여전히 성차별ㆍ성폭력을 맞닥뜨리는 현실에서 여가부가 '쓸모없는 부처'라는 이들의 주장을 허스토리와 함께 하나씩 뜯어봐요.


"여가부는 하는 일이 없다"

이준석 대표의 인식처럼 여가부는 "캠페인이나 하는 부처"가 아닙니다. 여가부는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성폭력 대응, 경력단절 여성 취업지원, 자녀양육 지원, 청소년 사회안전망 강화에 이르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특히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은 여가부의 중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날로 진화하는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도 여가부 산하 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문을 열었어요. 첫해인 2018년 2만 8,879건이었던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건수는 지난해 15만 8,760건으로 5배 넘게 늘었다고 해요. 피해자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여가부입니다. 불법촬영 방지를 위한 변형 카메라 관리법 도입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술과 산업 진흥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인 반면, 여가부는 법 제정에 적극적이에요.

"여가부라는 별도 부처는 필요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은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있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여가부 업무를 분야별로 나눠서 성범죄와 가정폭력은 사법 당국, 직장 내 성차별은 고용노동부, 아동 양육과 돌봄은 복지부ㆍ교육부가 담당하면 된다는 주장이에요. 모든 정부 부처가 성인지 관점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문제는 변형 카메라 관리법안 논의에서 보이듯 모든 부처가 성인지 관점을 탑재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여성 동료를 향한 성폭력이 자행되는 군, 미투 폭로가 터져 나왔던 검찰 내부의 젠더 감수성은 얼마나 향상됐을까요?

유 전 의원은 여가부 폐지 후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 설치를 대안으로 내놨는데요. 애초 여가부가 2001년 중앙부처로 출범하게 된 건 위원회 방식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여성 정책을 총괄하기에 인력, 법안 발의와 예산 집행 권한 등이 부족했던 탓이죠.

"여가부는 젠더갈등을 조장한다"

하태경 의원은 한술 더 떠 여가부가 젠더 갈등 조장부로 변질됐다고 외칩니다. 여가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일까요? 정부 주요 정책과 법령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해당 부처에 개선을 권고하는 제도인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예로 들어볼게요. 여가부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2013년에 공무원 육아휴직기간을 남녀 구분 없이 3년 간 사용할 수 있게 개선토록 했어요. 이전에는 여성은 3년, 남성은 1년만 가능했거든요.

2015년엔 '성인 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안내서'라는 책자도 발행했어요. 성폭력 피해 방지나 피해자 보호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미예요. 어느 누구든 성폭력과 성차별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처를 '젠더 갈등 조장' 부처로 표현하는 것은 이해 부족일까요, 의도적인 편 가르기일까요.

"여가부는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허스토리는 여가부가 완전무결한 부처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여가부의 정책이 미진했던 부분도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그 원인은 여가부가 예산과 인력, 힘에 있어 '초미니 부처'인 탓이기도 합니다. 여가부 올해 예산 1조 2,325억 원은 정부 예산 555조 원 중 0.2%에 불과합니다. 이 예산은 가족 55%, 청소년 26.5%, 권익증진(젠더폭력 피해자 지원) 10.5%, 여성 정책 6.8%로 나뉘어 쓰이고 있어요. 지난해 말 기준 여가부 인원은 333명입니다. 중앙 부처 인력은 고용노동부 7,711명, 보건복지부 2,604명, 문화체육관광부 3,101명에 이르는데, 여가부 인력 규모는 방송통신위원회(323명)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정말 적죠.

정부ㆍ공공기관 내 성추행 발생 시 여가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런데 여가부엔 사건을 직접 조사할 권한조차 없습니다. 현장 점검도 '사전 예방 영역'에서만 가능했던 여가부가 지난달 공군 현장 점검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이 사안의 심각성 때문이었어요. 다행히 이번 달부터는 사건 발생 뒤에도 현장 점검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어요.

여가부의 정책이 추진력을 지닐 수 있게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러한 현실 때문이에요. 정부 부처의 성과가 미흡했다면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입시 정책이 실패했다며 교육부 폐지를 주장하거나, 환경오염이 날로 심해진다고 환경부 폐지를 외치지는 않는 것처럼요.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니 갈등을 조장하는 당사자는 여가부가 아닌 듯하죠? 제1야당 인사들의 주장은 여성이 직면한 차별과 폭력을 부정한 채 일부 남성들의 표를 결집시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같은 당 조수진 의원조차 "양성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부처나 제도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그것을 통해서 한쪽의 표를 취하려는 건 또 다른 결의 '분열의 정치'"라고 비판했어요.

한국보다 성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도 '더 이상 여성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듣기 어렵습니다.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전담하는 국가기구를 둔 곳은 2016년 기준 191곳인데요. 170개국이었던 2008년보다 더 늘어났어요. 영국(여성평등부, 정부평등실), 독일(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프랑스(여성가족아동부) 등 137개국에는 한국처럼 독립부처가 존재합니다. 이름과 맡은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성평등을 중시하는 각국 철학을 보여주고 있어요.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허스토리도 여가부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답니다! 정확히는 여가부가 없어져도 되는 날, 정말로 성평등 한 사회가 되는 그날을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뚜벅뚜벅 함께 걸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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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 1990년대 말 세상을 바꾸던 '언니들'과 2021년 목소리를 내는 '우리들'을 연결해주는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왜 학교에서는 그동안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앞장서 온 이들의 이야기를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2021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됐다' 같은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에요.

'우리는 매일매일'은 이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예요. 강유가람 감독은 1990년대 말 대학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최전선에 있던 친구들을 소환합니다. 학내 반성폭력 규칙을 만들고, 호주제 폐지를 외치던 이들의 모습이 자료 화면과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요. 백래시에 지쳐가는 요즘, ‘우리 뒤에는 그 시절의 언니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든든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영화에는 이들의 현재 일상도 담겨 있어요. 소싸움 반대 시위를 하는 수의사 키라, 제주로 이주해 농수산물 꾸러미 사업을 하는 짜투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어라, 인디 뮤지션 흐른,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오매까지. 감독은 페미니스트도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옆의 누군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실천을 시작하면 된다"는 벨 훅스의 말이 떠올랐어요. 집, 학교, 직장에서 해 나가는 우리의 실천이 성차별ㆍ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한 분명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응원으로 들렸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변화를 만든다'는 말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어요. 여러분은 '우리는 매일매일' 다음 어떤 말을 넣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간다'는 메시지가 여러분께도 힘이 되길 바라며 이번 주 레터를 마감합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7월 15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양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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