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제정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
노조원 아닌데 노조기관지 작성해줬단 이유
재심 "증거 능력 없고, 법도 제한적 해석해야"

이목희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대표적 노동악법으로 꼽히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 의한 첫 번째 구속 당사자였던 이목희(68)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재심 무죄로 40년 간의 억울함을 씻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는 15일 옛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 받은 이 전 부위원장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불법체포·감금상태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 전 부위원장은 1981년 가발 수출 회사인 서통의 노조 활동을 도운 혐의(제3자 개입금지)로 구속돼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다. 제3자 개입금지는 전두환 군부정권이 1980년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면서 신설한 것으로, 직접 회사와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나 노조를 제외하고는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내용이다. 이 전 부위원장은 당시 섬유노조 기획전문위원으로 서통의 노조기관지인 ‘상록수’의 초안을 대신 작성해, 노조 활동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됐다. 제3자 개입금지를 위반해 구속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이 전 부위원장은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됐고,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 약 2주간 불법 구금된 채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탄압의 대표적 근거 조항으로 악용됐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2006년 12월 31일이 돼서야 폐지됐다.
이 전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군사독재 시절 잘못된 기록이 바로 잡혀 다행”이라며 “제3자 개입금지는 희대의 악법으로, 지식인의 참여를 봉쇄해서 노동운동 발전을 방해하고 민주화운동도 약화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술회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 전 부위원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수배와 옥살이를 거쳤고,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후엔 전국섬유노동조합에 가입해 노동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17대와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18년부터 2년 동안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 부위원장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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