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2주년 ... "근로자 절반이 제외"
"내가 산 커피를 누가 건드렸냐."
하청업체 직원 A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떨린다. 대기업(원청)에 파견돼 일하다 탕비실 냉장고에 있는 커피를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마셔도 되는 줄 알았다"며 사과를 해도 원청업체 직원 B씨의 고성은 멈추지 않았다. 편의점에 달려가 더 비싼 커피 여러 개를 사오자 B씨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너랑 같은 회사 사람으로 보이냐."
B씨의 '갑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틈만 나면 서류를 던지며 "네가 책임질 거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스트레스가 심해 불면증까지 시달린 A씨는 노동청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에는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 행위는 원청업체가 '자율적으로' 적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시행 2주년을 맞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은 '반쪽 법안'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사업장 규모나 고용 형태 등의 이유로 적용이 제외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직장생활을 하는 근로자 중 절반 정도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서다. 법 적용 대상인 회사에서도 예방교육 강화 등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자 절반 이상이 '무법지대'에 방치"
15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개최한 '갑질금지법 시행 2년 변화와 과제' 토론회에서 김유경 노무사는 "법 시행 이후에도 일하는 이들의 절반 가까이는 아예 법 적용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노동인권 보호라는 제정 취지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가해자와 소속이 다른 하청·용역·위탁노동자 △가해자가 사용자의 친인척인 가족회사 △노동성이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프리랜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378만 명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심각한 수준'이라 답한 사람은 33.1%였는데, 이중 5인 미만 사업장이 52.1%에 달했다.
김 노무사는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5인 이상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을 서류상 쪼개는 편법도 적지 않아 실제로 '무법지대'에 방치된 노동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각지대 사업장도 정부가 적극 조사 나서야"
당장 법을 바꿀 수는 없어도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고 시행령을 개정하면 문제점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처벌 규정이 없는 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고용부에 근로감독·지도 권한이 있다. 신고된 사건만큼이라도 조사와 개선 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법 적용이 되고 있는 사업장에서도 제대로 된 홍보나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 설문 결과, 법 시행 후 직장에서 관련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은 42.7%에 불과했고, 특히 비정규직은 75.8%가 교육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권오훈 직장갑질119 교육센터장은 "아직도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자 사이의 갈등, 개인의 일탈행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해 조직에 피해를 준다는 점을 인식하고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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