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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빠진 대중음악...메타버스·NFT·AI가수가 K팝의 미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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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빠진 대중음악...메타버스·NFT·AI가수가 K팝의 미래일까

입력
2021.07.15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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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에스파의 4명의 멤버와 각각의 아바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의 4명의 멤버와 각각의 아바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과 아바타가 함께 그룹을 이뤄 노래를 부르고, 아이돌 그룹의 아바타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에서 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상 가수가 오프라인에서 공연을 하는가 하면, 실제 공연장 대신 메타버스 속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가수도 있다. CD를 발매하던 가수는 실물 앨범을 내놓는 대신 자신의 사인이 담긴 디지털 아트워크와 음원, 뮤직비디오를 묶어 NFT(대체불가토큰)로 발매한다. 2021년 대중음악 산업의 풍경이다.

SM "메타버스와 NFT가 콘텐츠의 미래"

메타버스 열풍이 금융, 교육, IT(정보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가상자산인 NFT에 대한 관심이 미술 시장을 중심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K팝 업체들도 메타버스와 NFT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달 말 SM 비전 발표 영상과 이달 초 세계문화산업포럼 기조연설에서 연달아 ‘프로슈머’와 ‘메타버스’ ‘NFT’를 미래 콘텐츠의 화두로 꼽았다. SM의 고유 콘텐츠가 디지털 세상에서 팬들에 의해 재창조되면서 확장해나갈 것이고, 그런 콘텐츠는 높은 가치의 가상 자산으로 인정받을 것이며, 가수와 콘텐츠, 팬들이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 함께 호흡하게 될 거란 이야기다.

이 프로듀서의 야심은 SM의 신인 여성 그룹 에스파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에스파는 4명의 멤버와 이들의 아바타 넷을 결합한 신개념 그룹이다. 아바타 멤버들은 가상현실 공간인 ‘광야’의 ‘플랫(Flat)’에서 살지만 실제 멤버와 아바타가 연결되면 현실 세계로 오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에 너무 거창한 콘셉트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에 그치지 않고 만화(Cartoon), 애니메이션(Animation), 웹툰(Webtoon), 모션 그래픽(Motion Graphic), 아바타(Avatar), 소설(Novel)을 결합한 SM만의 혼합 영상 콘텐츠 장르 '카우만(CAWMAN)'으로 자사가 보유한 지적재산(IP)을 가상공간까지 확장하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이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에서 에스파의 세계관으로 영화화하자는 제의도 받았다"고 말했다.

대중음악계에서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는 최근 몇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 9월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아바타 형태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무려 4,600만 명이 모였다. 2019년 미국 유명 EDM 음악가 마시멜로는 게임에서 시작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거듭난 ‘포트나이트’에서 콘서트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래퍼 트래비스 스콧, 영국 밴드 이지 라이프 등이 같은 게임에서 가상 콘서트를 열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공개한 공간도 포트나이트였다.

미국 DJ 마시멜로가 '포트나이트' 게임 속 공간에서 펼친 가상 콘서트. 유튜브 캡처

미국 DJ 마시멜로가 '포트나이트' 게임 속 공간에서 펼친 가상 콘서트. 유튜브 캡처

아직 주요 K팝 기획사들이 뛰어든 건 아니지만 가상 가수들도 활동 중이다. VV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4월 초 애니메이션 이미지와 결합한 AI 가수 아뽀키를 내놨는데 유튜브 구독자가 29만 명에 이르고 틱톡 팔로워는 220만 명에 이른다. 앞서 2018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제작사 라이엇게임스는 게임 캐릭터를 이용해 만든 여성 그룹 ‘K/DA’를 선보였다. 최근 광고 시장에선 로지(신한라이프), 김래아(LG전자) 등 가상 인간이 모델로 활약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 K팝에서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닌 가상 인간 가수가 곧 등장하지 않을지 기대를 모은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10~20대는 메타버스 공간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상 캐릭터에 거부감이 덜하다"며 "가상 캐릭터의 캐릭터를 매력 있게 만들고 잘 관리해주면 일본의 하츠네 미쿠처럼 오래도록 인기를 끄는 가수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캐릭터 가수 아뽀키(왼쪽에서 두번째)가 실제 댄서들과 함께하고 있다. 아뽀키 인스타그램

가상 캐릭터 가수 아뽀키(왼쪽에서 두번째)가 실제 댄서들과 함께하고 있다. 아뽀키 인스타그램


JYP는 NFT 플랫폼 산업 진출

미술 경매 시장을 중심으로 NFT가 큰 주목을 받자 소속 가수와 관련한 콘텐츠를 가상자산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실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디 가수 디이어, 래퍼 팔로알토, 가수 세븐, 그룹 이날치 등이 NFT 음원·앨범을 내놓은 데 이어 JYP엔터테인먼트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손잡고 K팝 기반 NFT 플랫폼 사업에 나섰다. JYP의 최대주주인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은 자신의 지분 일부를 두나무에 매각하기도 했다. JYP 관계자는 “관련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이미 해외에서 많은 시도가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NFT 발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파일에 고유 식별값을 부여해 복제가 불가능하게 만든 가상자산이다. NFT 플랫폼이 활성화하면 K팝 가수의 음원이나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거래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해외에선 캐나다 출신 팝스타 위켄드가 디지털음원과 아트워크를 NFT로 판매한 적이 있고, 미국 팝스타 케이티 페리도 올 연말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여는 콘서트 관련 콘텐츠를 NFT로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내 NFT 매출이 지난 5월 정점을 찍은 뒤 고점 대비 99%까지 급락하면서 거품이 꺼졌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국내 K팝 기획사들의 관심은 높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최근 “미래에는 콘텐츠가 가치 있는 자산으로 평가받고 메타버스에서 거래되는 제3의 화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의 블랙핑크 아바타. 제페토 제공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의 블랙핑크 아바타. 제페토 제공


메타버스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 전문가 시선은 엇갈려

K팝 시장에서 가상현실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메타버스 플랫폼의 밑거름이 될 온라인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하이브는 지난 1월 월활성이용자 수가 3,000만 명에 달하는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 ‘네이버 V라이브’를 인수해 자사의 플랫폼 위버스와 통합하기로 했다. 여기엔 YG도 합류한 상태다. 이에 맞서 엔씨소프트는 카카오 산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함께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유니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SM은 자회사 디어유를 통해 온라인 팬클럽을 서비스 중인데 JYP가 최근 디어유의 지분 일부를 취득하며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메타버스 투자 열기도 뜨겁다. 국내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의 제페토에 하이브는 70억 원, JYP와 YG엔터테인먼트는 각각 50억 원을 투자했다. 이에 질세라 SM은 지난달 메타버스, 인공지능, 로봇 등 기술 협력ㆍ공동 연구를 위해 카이스트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최근 SM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 지분 일부를 카카오가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SM이 카카오와 손잡고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게 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K팝 기획사들의 메타버스·NFT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포트나이트 등 메타버스 플랫폼 공연에 들어오는 사용자 수가 몇십만 명에서 수천만 명에 이르며 공연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게 감지된다"면서 "메타버스에선 현실에서 줄 수 없는 경험, 특히 개인화된 경험을 줄 수 있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재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NFT에 대해서도 "아직은 변동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광풍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위정현 교수는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확인된 메타버스 플랫폼은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같은 게임이 대부분"이라면서 "메타버스 공간에서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메타버스에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 것이며, 그들이 계속 머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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