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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는 시간도 현대음악이 된다고? 

입력
2021.07.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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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왼쪽)가 무대 위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지휘하고 있다. 음악에 심취한 지휘자의 표정과 달리 단원들은 4분여 시간 동안 그 어떤 음도 연주하지 않는다. 베를린필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왼쪽)가 무대 위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지휘하고 있다. 음악에 심취한 지휘자의 표정과 달리 단원들은 4분여 시간 동안 그 어떤 음도 연주하지 않는다. 베를린필 유튜브 화면 캡처

충격적인 불협화음, 음산한 분위기, 공포영화 같은 사운드. 많은 사람이 현대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서양음악은 오랫동안 조성음악에 기반해 왔다. 조성 시스템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본격 확립됐다. 조성 시스템 안에선 으뜸음을 중심으로 음들이 질서를 가진다. 마치 중력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것과 같다. 음들의 진행은 예상 가능하고, 귀에 편안하다. 하지만 현대음악은 지구 밖 재료로 만들어진 노래처럼 느껴진다. 낯설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음악들을 소개하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인들의 의무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음 달 26, 27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윤이상 작곡가의 '관현악을 위한 전설: 신라'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무대에 올린다. 한국적인 요소를 띤 현대음악이라 무대는 더욱 뜻깊다.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현대음악이 두렵다.

현대음악 가운데 악명 높은 작품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다. 여러 음악 교과서에서도 대표적인 현대음악으로 소개된다. 조성이 없는 무조성 음악이 만드는 불협화음과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괴한 음향은 듣는 사람을 충격에 빠트린다. '예술은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가 없으며,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쇤베르크의 결론이었다. 또 현대음악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다. 무대에 오른 예술가는 4분 33초간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이 작품 '4분 33초'의 음악이 되는 것. 라면이 끓는 시간조차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음악의 본질을 되묻는 전위적인 음악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현대음악과 더욱 멀어진다.

현대음악이라고 불리는 장르는 지난 100년간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특별한 방향과 경향성이 없다. 하지만 살아남았다고 평가받는 음악은 있다.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 음악만큼은 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청자가 듣기 편한 음악으로까지 확장되며 대중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비움'에서 시작한다. 오선지에 음표를 채워야 하는 음악가들은 음표를 덜어내려고 노력한다. 최소한의 재료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주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기승전결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음악 안에서 유영하면 충분하다. 정보 홍수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태생적으로 비워 두고 있기에 다른 매체와의 결합도 수월하다. 박찬욱 영화감독은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필립 글래스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영화 '스토커'에서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피아노 듀엣은 아주 유명하다. 두 남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조금씩 변주되는 주제로 대변한다. 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참여한 두 영화 '노매드랜드' '더 파더'가 모두 수상작이 되었다. 영화에 들어간 음악 '로 미스트(Low Mist)' 는 1주일간 알프스 하이킹에서 느낀 감정을 담아낸 곡이다. 반복되는 음악은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국내에서 LG 시그니처의 광고음악으로도 친숙하다. 작품 '프리마베라(Primavera·봄)'가 광고에 쓰였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달에 홀린 피에로'를 작곡한 쇤베르크는 '언젠가 관객들이 내 음악을 베토벤 음악처럼 흥얼거릴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은 오지 않았다. 바쁜 현대인들이 음악에 기대하는 건 힐링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게 들리는 무조성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기보다 예술에서 휴식을 찾는다. 30분 동안 불을 보며 멍 때리는 '불멍' 콘텐츠가 영화관에 등장하고, 기분 좋게 자극하는 소리인 '자율감각 쾌락 반응(ASMR)' 콘텐츠가 인기를 누리는 시대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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