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이냐, 숙청이냐.’
북한 군 수뇌부들이 ‘두 갈래’ 길 앞에 섰다. 최근 북한군 서열 1위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군 최고위급 간부들이 줄줄이 문책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이들이 바라는 최상의 ‘롤 모델’은 한때 대장으로 강등됐다 차수로 복권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반대로 2017년 ‘2인자(차수)’ 자리에서 6계급이나 강등(상좌)된 뒤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의 전철은 밟아선 안 될 길이다. 2012년 집권 후 잦은 인사를 통해 군부를 길들여 왔던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힘빼기’ 수위를 어느 정도로 정하느냐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군 고위 간부들의 ‘물갈이’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7주기에 열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장면이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리 부위원장은 맨 앞줄에서 김 위원장과 함께 참배하는 다른 상무위원들과 달리 셋째 줄에 자리했다. 상무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되고, 비서직에서도 해임돼 군수공업부장직만 맡고 있는 것으로 국가정보원은 추정했다. 군 서열 2위인 박정천 군 참모총장도 원수에서 차수로, 4위인 김정관 국방상은 차수에서 대장으로 계급이 낮아졌다.
군 최고위급 인사들의 ‘무더기 추락’은 김정은 체제 들어 군 위상은 하락한 대신, 과업은 많아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 비근한 예로 북한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및 관련 과제까지 군이 도맡아야 한다. 김 위원장 속내에 따라 군에 책임을 미루고, 또 통제를 조일 수도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대북 전문가들은 강등된 군 수뇌부들의 거취도 이번 인사 목적에 달려 있다고 본다.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한 ‘일시적 힘빼기’로 보는 쪽은 세 사람이 김 위원장 군사정책을 구현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핵, 미사일 등 김정은표 전략무기 개발 정책의 주역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핵을 위시한 대결적 군사행보를 거두지 않는 이상, 이들을 쉽게 내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과거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며 권력 균형추를 맞췄던 ‘최룡해 사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일종의 ‘군기잡기’ 일환으로 좌천과 승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며 “군 과업에서 일정 성과를 내면 복귀시킬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숙청 정치’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에 국경 봉쇄 장기화로 식량난이 갈수록 가중되자 군부에 책임을 돌려 민심을 다잡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김정은 시대 노동당이 통치 정점으로 굳건히 자리잡으면서 군부에 대한 ‘잡도리’가 쉬워진 측면도 엿보인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주민들과 별도로 군부 자체도 ‘고난의 시기’가 시작됐다”며 “북한 내부 상황이 어려워진 가운데 충성심 및 사업 태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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