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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1초’ 신아람 “후배들아, 금메달만이 전부는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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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1초’ 신아람 “후배들아, 금메달만이 전부는 아니더라”

입력
2021.07.13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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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달에게도 박수를 / 즐겨라, 코리아]
개인전 금 못 따고 은퇴…이젠 ‘생활 펜싱’ 선생님?
“운동을 즐기고, 승복하는 걸 보며 새로운 보람”?
“메달에만 집착하는 올림픽 분위기 변했으면”

자신의 이름을 딴 펜싱클럽을 연 신아람이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자신의 이름을 딴 펜싱클럽을 연 신아람이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2012년 7월 31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 런던올림픽 펜싱 경기가 열린 이곳 피스트엔 4강에서 어이없이 패한 한국 펜싱 선수가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당시 26세로 첫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던 여자 에페 대표 신아람(35)이었다.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오심 사건인 ‘멈춰버린 1초’의 주인공이 된 그는, 결국 4년 후 리우 대회에서도 메달을 따내지 못한 채 ‘개인전 노메달’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했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둔 2021년 그는 ‘국가대표 신아람’이 아닌 ‘1986년생 신아람’의 삶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간 훈련장에 쏟았던 청춘을 뒤늦게나마 찾은 셈이지만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나날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서초구 한 건물의 지하를 빌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펜싱 클럽을 차렸는데, 개업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란 악재와 싸우면서도 펜싱의 참맛을 알아가는 어린이들을 보며 선수 시절과는 또 다른 행복을 겪는단다.

엘리트 지도자 대신 ‘동네 펜싱’ 선생님 된 이유

최근 ‘신아람 펜싱클럽’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19로 운영이 힘들겠다’는 기자의 말에 “선수 생활을 하면서 워낙 힘든 적이 많아서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고 웃으며 답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 시절엔 금메달이 전부였다. “사실 그랬어요. 다른 대회는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거기까지 갔어요. 금메달이 ‘완성’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실패하면 내가 ‘틀린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패했을 때는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죠.”

신아람뿐만이 아니었다. 올림픽 메달이 국위선양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죄인이 돼야 했다. 해외 선수들이 올림픽 자체를 축제처럼 즐길 때, 한국 선수들은 비장함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했다. 선수들이 올림픽의 무게와 회한을 떨쳐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재미있는 펜싱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엘리트 지도자 대신 사업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학원에 관해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뿌듯함이 녹아났다. 그는 “(습득이)될까 싶던 아이들이 발전하고 펜싱을 즐거워하면 너무 뿌듯하다”며 “이곳에서 만족을 느끼고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없어도 돼’라고는 못하겠지만...金만이 성공은 아냐”

결과와 성과에 얽매인 부담을 털어내니 비로소 느끼게 된 펜싱의 또 다른 맛. 현역 생활을 돌아본 그는 “꼭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신아람은 “은퇴를 결심한 것도 여기서 금메달 하나 더 딴다고 더 행복할 것 같진 않아서였다”고 했다.

이제 금메달을 ‘사냥’하러 나서는 후배들에게도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메달을 따면 확실히 좋은 부분이 있어서, ‘없어도 돼’라는 말은 솔직히 못하겠어요. 하지만 젊으니까 다음에 또 도전할 수 있잖아요? 메달이 선수로서 중요하지만 인생 전체로 봤을 때는 ‘꼭 그것만이 성공’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 언제 (대박) 터질지 모르죠.”

“성과 위해 공정성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신아람이 2012년 7월 31일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여자 에페 개인전 4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패한 뒤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신아람이 2012년 7월 31일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여자 에페 개인전 4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패한 뒤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놓친 메달에 스스로를 부정하려는 신아람을 사람들은 부정하지 않았다. 덩그러니 앉아 아이처럼 울던 그를 ‘우리의 딸’이라며 보듬었다. 메달에 실패한 이들을 욕하던 대중적 가혹함도 끼어들 힘을 잃었다. 한국 사회, 특히 스포츠에 만연한 성적지상주의 분위기에 대해 신아람은 “저는 당한 적 없지만 기사나 이런 것들을 보면 과도한 게 있더라.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좋지만, 금메달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또 그런 이유로 선수를 압박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신아람은 스포츠에서 공정이 무너지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는 ‘선수 시절 가장 후회됐던 기억’을 묻는 기자의 말에 대학교 1학년 때 대표 선발전 ‘밀어주기 관행’이 있었는데 자신도 동참했다고 털어놨다. 당시에는 지도자들의 권한이 과도해 성적 외에도 코치에게 잘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종목이 허다했다. 신아람은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랬다. 선수 선발이 더 투명하게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최동순 기자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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