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시 20분 노환으로 작고… 향년 93세
6·25 전쟁 첫 해전 참가해 승전하는 등 공 세워
대권도전 차남 최재형에 '대한민국 밝혀라' 유언
6ㆍ25전쟁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오전 1시 20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최 대령은 1928년 강원 평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독립운동가 최병규 선생이다. 1947년 9월 해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했고 1950년 2월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첫해에 발발한 6ㆍ25전쟁에선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으로 복무하면서 개전 이튿날 대한해협해전에 참가해 1,000톤급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하는 데 공을 세웠다. 당시 북한 수송선은 병력 600여 명을 태우고 동해상에서 남하해 부산으로 침투하던 중이었다. 이 전투는 해군이 6·25전쟁에서 거둔 첫 승전보였다. 고인은 이후에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2차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해군 첫 구축함인 충무함(DD-91) 함장이던 1965년에는 일본 어선으로 위장한 북한 간첩선을 적발했다. 군 복무 중 세운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3회 포함 6개의 훈장을 받았다. 해군은 올해 4월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지 않은 예비역 중엔 처음으로 최 대령의 일대기를 담은 '지략·용기·덕망을 겸비한 최영섭 대령' 평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8년 전역한 최 대령은 1975년부터 해양소년단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안보 강연을 해왔다. 또 서해를 수호하다가 목숨을 바친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참전용사의 위국헌신 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 나서왔다. 2018년엔 해군 전사·순직자 자녀를 위해 써달라며 3,000만 원을 바다사랑 해군장학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 대령 집안은 병역 명문가로 불린다. 두 동생은 각각 해병대 대령과 해군 중사로 전역했다. 장남은 해군 대위, 차남은 육군 중위, 셋째는 공군 대위, 넷째는 육군 소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유족은 최재신 전 고려개발 사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최재민 소아병원장, 최재완 광주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이 있다. 차남인 최 전 원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다리를 쓰지 못하는 동료를 2년간 업어서 출퇴근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최 전 원장은 이날 빈소에서 취재진에게 부친이 자신에게 유언으로 '대한민국을 밝혀라'라는 글씨를 남겼다고 밝혔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전날 정치 참여 선언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부친과 상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 대령은 "소신껏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취지로 아들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특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9시. 장지는 본디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을 고려했으나, 고인이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변경했다. 국가보훈처는 심사를 거쳐 안장을 승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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