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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은 권위주의 체제 유지 필요악… 인터넷 시대인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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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은 권위주의 체제 유지 필요악… 인터넷 시대인 지금은?

입력
2021.07.08 15: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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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검열관들은 왕에 대한 공격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원고가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될 리 없었던 것이다. 대신 왕을 제대로 찬양하지 못한 원고들 때문에 긴장했다. 한 검열관에 따르면 어떤 오페라 대본은 저자가 서막 부분을 삭제할 경우에만 출판할 수 있었다. 서막에 나오는 루이 15세에 대한 찬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58쪽)

18세기 프랑스 왕정의 검열관들은 권력자의 뜻에 따르고 유력 인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마치 중국 정부의 감시·검열 영향권에 놓인 최근 홍콩의 상황과도 크게 다를 게 없는 행태다.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기를 거부해 온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지난달 폐간된 후 홍콩에서는 언론의 자기 검열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구한 창작의 역사만큼이나 국가가 행사하는 정치적 검열도 오랜 역사를 거치며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고양이 대학살'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최신 저작물인 '검열관들: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 왔는가'는 독자를 검열의 역사적 현장으로 초대한다. 사소한 문화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신문화사' 대가인 저자는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 19세기 후반 영국 통치하의 인도, 20세기 냉전시대의 동독 등 각기 다른 세 곳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출판 검열이 이뤄진 방식을 추적한다. 저자는 풍부한 사실(史實)을 토대로 출판을 넘어 모든 제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시대별 검열 양식을 되짚는다. 다만 평생 서양사와 책의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답게 검열을 단순히 무지한 관료에 의한 노골적 억압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서 검열받은 서적의 전형적인 표제지. '아메리카의 섬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1722)'. 맨 아래 '왕의 허가와 특허를 받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서 검열받은 서적의 전형적인 표제지. '아메리카의 섬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1722)'. 맨 아래 '왕의 허가와 특허를 받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책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의 검열관과 작가의 관계는 오늘날 작가와 편집자 간 관계와 유사했다. 이 시기 검열은 양질의 도서에 '특허'를 내주는 형식이었다. 검열은 해당 도서에 대한 왕실의 보증이자 그 책을 읽으라는 공식적 권유였기에 검열관은 원고를 개선하고자 공을 들였다.

19세기 영국령 인도는 원칙적으로 출판의 자유가 있었지만 정부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면 엄중한 제재를 가했다. 농장주를 비판하는 내용의 희곡 '닐 두르판'이 법정에 소환된 게 대표적인 예다. 벵골 지역에서 활동한 영국계 아일랜드인 선교사 제임스 롱은 '닐 두르판' 영문판 출판으로 농장주 집단 전체를 명예훼손했다며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저자가 전직 검열관들에게 직접 들은 동독의 검열은 '계획'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출판은 다른 모든 것처럼 철저히 계획됐다. 검열은 자연스럽게 작가뿐 아니라 출판계의 모든 층위에서 이뤄졌다.

크리스타 볼프의 '카산드라' 동독판. 정부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볼프는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110쪽 상단 대괄호 안 말줄임표로 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오른쪽 사진은 검열되지 않은 서독판에서 가져온 말줄임표에 들어갈 내용을 담은 메모로, 동독 내에서 은밀히 유통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크리스타 볼프의 '카산드라' 동독판. 정부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볼프는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110쪽 상단 대괄호 안 말줄임표로 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오른쪽 사진은 검열되지 않은 서독판에서 가져온 말줄임표에 들어갈 내용을 담은 메모로, 동독 내에서 은밀히 유통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시기에 따라 검열관의 모습은 이렇게 제각각이었지만 검열의 존재 목적은 같았다. 대중에 대한 책의 영향력을 통제하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제어하는 것. 특히 프랑스 왕정 시기 검열은 마치 출판의 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권위주의 체제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그만큼 중요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왜 권위주의 시대 책 검열 과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을까.

저자는 국가의 힘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기술 발전으로 커뮤니케이션의 힘도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출판 분야의 국가 개입은 원고를 수정하고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출판의 틀 자체를 짤 정도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수많은 예시를 통해 검열이 창작과 탄압의 평면적 대립 구도가 아닌 수많은 협력과 협상, 공모를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저자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한 이듬해인 2014년에 책을 내놓은 데서 출간 의도를 가늠해 봄 직하다. "인쇄 시대에 국가가 그 정도의 힘을 행사했다면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에는 그러한 힘의 남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이 시대 독자들에게 던지는 외면하기 힘든 질문이다.

검열관들: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 왔는가·로버트 단턴 지음·박영록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407쪽·2만2,000원

검열관들: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 왔는가·로버트 단턴 지음·박영록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407쪽·2만2,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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