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 vs 혐오 규탄… 대조적인 東西
BBC "진보 속도 차"… "가톨릭 영향" 분석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유럽을 이념으로 가르던 ‘철의 장막’은 이제 사라졌다. 대부분 동유럽 국가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서방 자유주의 진영으로 투항하면서다. 하지만 지금도 동서는 다르고, 대체됐을 뿐 장막의 존재도 여전하다. 새로운 장막은 바로, ‘성소수자 권리 인식’을 분리하는 ‘무지개 장막(rainbow curtain)’이다. 다양성을 내포하는 무지개는 LGBTI(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간성)로 통칭되는 성소수자의 상징인데 지난해 11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에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공교롭게 같은 날이었다. 5일(현지시간) 동유럽 국가 조지아와 서유럽 국가 스페인에서는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성소수자는 척결의 대상이었다. 영국 BBC방송과 현지 언론 시빌조지아 등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 모인 시위대는 “동성애는 공산주의보다 더 파괴적인 이념”이라 외치며 무지개 깃발을 불태웠다.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스페인 시위의 주장은 정반대였다. 수도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집결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동성애 혐오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동성애 혐오는 파시즘(전체주의)과 같다”는 구호가 들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3일 성소수자 사무엘 루이스(24)가 괴한들에게 구타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성소수자 혐오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서유럽에서는 존중과 포용이 점점 차별주의자들을 포위해 가고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간 동서의 차이는 아일랜드와 리투아니아 사례에서 극명하다. 가톨릭 국가인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인 1993년 동성애가 범죄가 아니라는 법을 발표했는데, 현재 양국의 성소수자 권리 보장 정도는 전혀 다르다. 아일랜드는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며 동성 부부의 결혼·입양까지 허용한 반면, 리투아니아의 경우 성소수자 10명 중 8명이 두려움으로 커밍아웃(정체성 공개)을 하지 못할 정도라는 게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소개다.
동유럽 국가들의 후퇴로 실제 유럽 내 격차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는 게 2009년부터 ‘무지개 지수’를 통해 해마다 유럽 국가들의 국가별 성소수자 권리 보장 순위를 매기고 있는 유럽 최대 성소수자 권리 옹호 단체인 ‘일가(ILGA) 유럽’의 주장이다.
아무래도 핵심 배경은 동서의 진보 속도 차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세례를 서유럽이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BBC는 조지아 시위 상황을 전하며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 금지되는 유럽이지만,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 여전히 보수적 사상을 유지하며 성소수자 차별의식 속에 갇혀 있다고 설명했다. 종교도 이유다. 안병억 교수는 “과거 가톨릭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회복한 역사가 동구권 국가들에 많다”며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행태는 가톨릭 선교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서유럽은 다시 장막을 걷어 내려 한다. 지난달 회의에서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은 최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안이 헝가리 의회를 통과했다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힐난했다. 해당 법안은 학교 성교육이나 18세 이하 미성년자 대상 영화·광고 등에서 동성애 묘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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