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가요 시장의 중심을 흔들고 있는 K-아이돌. 이들의 뜨거운 인기를 견인하는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세계관'이다.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콘셉트의 근간에 위치한 '세계관'이 K팝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12년 데뷔한 그룹 엑소(EXO)부터였다. 당시 '붉은 기운의 눈에 의해 둘로 나뉜 생명의 나무가 지구에 숨겨졌으며, 지구에 불시착해 살아가게 된 12개의 전설이 각각 초능력을 얻고 서로의 존재를 깨달은 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다'라는 장대한 세계관으로 출발을 알렸던 엑소는 유례없는 콘셉트로 화제를 모았었다.
엑소에 이어 아이돌 시장에 '세계관' 문화를 완벽하게 정착시킨 그룹은 방탄소년단이었다. 이듬해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불안정한 청춘의 단면을 'BU 세계관' (BTS Universe)에 담아내며 '학교' '화양연화' '윙스' '러브유어셀프' '스피크유어셀프' 시리즈 등으로 탄생시켰다. 이들의 세계관은 국내외 음악팬들이 방탄소년단에게 유입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고, 방탄소년단과 엑소의 선례를 따라 수많은 K 아이돌그룹들이 각기 다른 서사로 무장한 세계관을 필두로 데뷔 도전장을 던졌다.
이제는 K팝 아이돌 문화만의 독특한 차별점이자 무기가 된 세계관은 단순히 듣는 것에 국한된 가요 문화를 넘어 '듣고 보고, 그 속에 담긴 세계관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수준으로 진화시켰다.
▲ 에스파
K팝 시장에서 세계관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소속 아티스트 고유의 색깔을 공고히 구축해 나가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 신인 걸그룹 에스파는 그야말로 SM표 세계관의 '결정판'이다.
SM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미래 세상은 셀러브리티와 A.I.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소개와 함께 포문을 연 SMCU(SM Culture Universe)의 첫 주자로 나선 에스파는 가상 현실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인 '아이'와 싱크를 통해 소통한다는 파격적인 미래지향적 콘셉트를 내세웠다.
이들은 데뷔곡 'Black Mamba (블랙맘바)'와 신곡 'Next Level (넥스트 레벨)'을 통해 에스파와 '아이'의 연결을 방해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를 찾기 위해 'KWANGYA'(광야)로 떠나는 세계관의 여정을 그려냈다. A.I와 결합한 세계관을 증명하듯 뮤직비디오는 물론 음악 방송 무대에서도 수시로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은 이들의 세계관을 한층 더 공고히 만들었다.
에스파는 데뷔 이후 첫 컴백만에 국내 주요 음원 차트는 물론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까지 일궈내며 본격적인 '4세대 대표 아이돌'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SMCU의 첫 주자로서 파격적인 세계관을 이어나갈 이들을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 킹덤
GF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킹덤은 '판타지돌'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방대하면서도 파격적인 콘셉트를 무기로 내세웠다.
이들의 세계관은 '7개의 왕국, 7인의 왕'이라는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다. 일곱 명의 멤버들의 이름 역시 단 아서 무진 루이 아이반 자한 치우로, 실제 왕들의 이름에서 따오며 이같은 세계관에 대한 진심을 더했다.
킹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매 앨범 새로운 왕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데뷔 앨범 주인공이었던 '비의 왕국' 아서를 시작으로 두 번째 앨범에서는 '구름의 왕국' 치우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새 뮤직비디오를 통해 예고된 다음 주자는 '눈의 왕국' 아이반이다.
세 멤버 외에도 '변화의 왕국'을 맡은 단, '벚꽃의 왕국' 무진, '미의 왕국' 루이, '태양의 왕국' 자한 등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독보적인 판타지 콘셉트 무대를 예고한 만큼 이들을 향한 기대를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킹덤은 데뷔 이후 각종 해외 차트에서 신인답지 않은 굵직한 성과들을 일궈내며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음악 팬들은 독보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들이 선보이는 블록버스터급 무대에 호평을 보냈다. 이에 힘입어 '영화같은 무대'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킹덤의 성장세에 이목이 집중된다.
▲ 이달의 소녀
무려 1년여 간의 역대급 프로모션 끝에 데뷔해 이제는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달구는 K팝 대표주자로 성장한 이달의 소녀 역시 공고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팬덤을 구축한 대표적인 그룹이다.
이달의 소녀는 팀 내에 존재하는 세 개의 유닛 그룹을 중심으로 독특한 '루나버스' 세계관을 확장해오고 있다.
유닛 중 1/3은 지구, yyxy는 에덴, 오드아이써클은 중간계를 의미하며 오드아이써클은 지구와 에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다는 유기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이들은 모든 멤버들이 개인의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각의 유닛과 하나의 그룹을 완성해 나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매 앨범 컴백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각 멤버들의 '루나버스' 세계관 요소들은 빠르게 몸집을 불리며 전 세계 팬들에게 '읽어내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만큼, 팬들은 '탐정' 못지 않은 추리력으로 뮤직비디오나 앨범 속에 숨겨진 세계관 힌트들을 찾아내는데 몰두하고 있다.
결국 이같은 확장형 세계관은 이달의 소녀가 보다 공고하고 이탈 없는 글로벌 팬덤을 유지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됐다.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오빛'(이달의 소녀 팬클럽 명)들이 '루나버스'에 주목하고 있다.
▲ 엔하이픈
허구적인 세계관 대신 사실적인 청춘의 이야기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룹 방탄소년단의 뒤를 이어 하이브 레이블 후배인 엔하이픈 역시 보다 사실적인 자아를 담은 세계관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엔하이픈의 세계관은 10대의 공감에 초점을 맞춘 '자기성찰적'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10대인 멤버들의 실질적인 고민과 복잡한 감정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세계관이라는 큰 틀 안에 녹여낸 엔하이픈은 첫 앨범에서 '데뷔라는 꿈의 실현이 멤버들에게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멤버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투영해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어 지난 4월 컴백에서는 데뷔 후 마주한 색다른 세상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자신도 모르게 이에 도취되어 가는 모습을 솔직한 감상으로 그려내 공감을 전했다.
엔하이픈이 추구하는 세계관은 앞서 언급한 에스파 킹덤 이달의 소녀와는 확연히 다른 결을 지향한다. 앞선 세 팀이 그룹의 색깔을 짙게 만들 콘셉추얼한 세계관에 집중했다면, 엔하이픈은 자신들의 '자아'에 집중한 보다 넓은 의미의 세계관의 전개를 예고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배 그룹인 방탄소년단을 떠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10대의 뜨거운 공감을 기반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엔하이픈이 확장해 나갈 세계관에 대한 기대는 높다. 이들이 방탄소년단의 세계관과는 또 다른 '자기성찰적' 이야기들로 하이브 신화를 이어나갈 지 지켜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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